#1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가 지난달 발표한 '미국의 경제계층 이동(Economic Mobility in America)'이란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대부터 약 1000가구를 대상으로 장기간 분석한 결과 미국 최하위 20% 소득계층에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최상위 20% 계층에 편입될 확률은 단 6%에 불과했다.

반면 최상위 20% 출신의 경우 39%가 계속 이 계층에 남았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도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 사회의 오랜 믿음이 점점 헛된 꿈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빈부격차는 이제 단순한 소득금액의 차이가 아니라 중세시대의 신분처럼 고착화되고 있는 셈이다.
[Global Issue] 세계경기 침체로 심화되는 빈부격차
글로벌 경제에 국경이 없어지고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계층 간 소득 불평등 현상은 2000년대 들어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최근에는 선진국가는 물론 신흥경제국까지 전 대륙에 걸쳐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체제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발 금융시장 신용경색과 원자재값 폭등으로 대변되는 실물경제 악화 등은 빈부격차를 더 벌려놓고 있는 상황이다.

[Global Issue] 세계경기 침체로 심화되는 빈부격차
◆소득 불평등,대륙을 가리지 않아

'1만5300달러 대 107만1500달러'. 미국 의회예산국(CBO)이 최근 공개한 2005년 미국 소득 최하위 20%와 최상위 1% 계층이 벌어들인 평균 소득이다.

1% 부자들은 전년보다 17만9900달러의 소득을 더 올려 소득 증가율이 20.1%에 달했지만,최하위 빈곤층은 불과 200달러(1.3%)만을 더 버는 데 그쳤다.

미 국세청에 따르면 2005년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상위 400명이 신고한 연간 소득은 총 856억달러로 전년 대비 23.8%나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빈곤층의 소득은 사실상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부자들은 부의 축적 속도를 더욱 높여갔다는 점을 한눈에 보여줬다.

특히 올 들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위기가 닥치면서 빈익빈 문제는 한층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의 경우도 소득격차가 심각한 상황이다.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의 지난해 통계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지니지수는 개혁·개방 정책을 펴기 전인 1978년 16.0이었으나 2007년 46.9로 치솟았다.

지니지수가 0이면 소득 완전 평등,100이면 완전 불평등을 뜻하며 40을 넘으면 빈부격차가 위험수위에 달했음을 뜻한다.

또 중국 국무원은 전국 도시 주민의 상위 10%가 도시 전체 부의 45%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10%가 차지하는 부의 비율은 단 1.4%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니지수 24.9로 아시아 지역에서 소득 불평등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지만,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소득격차와 이에 따른 계층적 갈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의 2007년 고용통계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5200만명 중 비정규직은 33.5%인 1732만명이었다.
[Global Issue] 세계경기 침체로 심화되는 빈부격차
2002년 29.4%였던 비정규직 비율은 5년 만에 4.1%포인트 뛰었다.

최근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고 일정한 거처 없이 인터넷카페나 만화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네트카페 난민'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런 사회상을 반영하듯 지난해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애환을 다룬 '파견의 품격'이란 드라마가 일본 NTV에서 방영돼 시청률 20%로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소득 불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성장률이 5.4%에 달했던 브라질은 2007년 현재 지니지수 57.0으로 극심한 빈부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브라질 인구의 15~20%가 살고 있는 달동네 빈민가를 가리키는 '파벨라(favela)'는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 같은 대도시 방문시 고급 주택가와 함께 관광객들이 꼭 방문해야 할 '빈부격차의 명소'가 돼버렸을 정도다.

아프리카 대륙의 부국으로 꼽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소득 양극화는 심각한 고질병이다.

남아공 통계국에 따르면 2006년 소득 최상위 10% 계층이 벌어들인 돈은 총 480억달러로 남아공 전체 국가 소득의 51%를 차지했다.

또 최상위 10% 부자 중 73%가 백인이고 17%가 흑인인 반면 최하위 10% 빈곤층 가운데 93%가 흑인으로 조사돼 인종에 따른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했다.

◆중산층 붕괴의 가속화

소득격차가 더욱 커지면서 사회를 지탱하는 허리 역할의 중산층 붕괴 문제가 각국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은 2005년 앙겔라 메르켈 총리 취임 이후 본격적인 경제 회복기에 접어들었지만 중산층은 오히려 더 얇아지고 있는 추세다.

독일경제연구소(DIW)가 이달 초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의 중산층은 1990년대 말까지 전체 인구의 62%인 4900만명에 이르렀지만 2006년엔 54%(4400명)로 내려앉았다.

또 중산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실질소득도 1990년대 말 이후 5% 감소했다.

DIW는 연간 가처분소득 1만6200유로(약 2522만원)를 기준으로 이 소득의 90%(1만4580유로)에서 110%(1만7820유로) 사이의 소득 계층을 중산층으로 잡았다.

한국도 중산층 위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7년 4분기 및 연간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도시 근로자 상위 20%(1분위)의 소득은 하위 20%(5분위)의 소득에 비해 5.44배가 많았다.

2006년 5.38배보다 높아진 수치며,1999년 5.49배 이후 9년 만에 가장 큰 소득 격차다.

중산층에 속하는 2~4분위의 소득 증가율은 5~6%대에 머물렀다.

다시 말해 소득 계층의 '중간' 개념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뜻이다.

◆해법은 없는가

소득 불평등이 세계적인 해결 과제로 부각되면서 각국 정부에서도 일자리 창출과 사회복지와 관련된 각종 정책을 내놓으며 민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교육 기회 확대 또한 빈부격차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된다.

이사벨 사와힐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인들의 계층 이동 가능성은 교육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며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는 저소득층 출신 어린이들에 대한 조기 교육 투자를 늘리는 등 강력한 교육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