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무렵이던가 어느날 여자친구가 떠났어…허탈함 달래려 붓 매달렸지…"

민선4기 서울 강남구를 이끌고 있는 맹정주 구청장(61)은 문화ㆍ예술 전도사로 통한다. 그의 문화ㆍ예술 사랑은 구 청사에서도 물씬 풍겨난다. 구 청사는 조달청이 과거 창고로 쓰던 곳. 때문에 겉모습은 초라하다.

하지만 내부는 미술관으로 착각할 만큼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들 작품은 분기마다 한번씩 교체된다. 현재까지 전시됐던 작품만도 모두 337점에 이른다. 맹 구청장은 앞으로 테마별 미술 전시회도 열 생각이다.

강남구는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교향악단을 갖고 있다. 지휘자 서현석씨(67)가 이끄는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다. 맹 구청장은 조만간 별도 재단을 설립,오케스트라의 규모를 키운다는 방침이다.

맹 구청장에게 문화ㆍ예술은 생활 그 자체다. 붓글씨를 쓰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드럼을 친다. 특히 서예는 과거 국전(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입선했을 만큼 수준급이다.

문화ㆍ예술 전도사로서의 여정은 충북 영동의 시골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56년 담임 선생님이 미술을 전공해 공부보다는 그림을 더 많이 배웠죠. 제 그림이 교장실은 물론 군수실 교육감실에까지 걸렸을 정도니까 꽤 재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서예는 경기고 시절 당대의 명필로 손꼽히던 일중(一中) 김충현 선생(2006년 작고)에게 배웠다. 칭찬에 인색했던 일중 선생이지만 맹 구청장 만큼은 '대가의 기질이 있다'며 아꼈다. 고등학교 2학년인 1964년 한 일간지가 주최한 제1회 전국 초ㆍ중ㆍ고 학생휘호대회에 출전,최고상인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서울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9년에는 제18회 국전에도 입선했다.

이때 국전에 도전한 동기가 재미있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나니까 허탈함을 견딜 수 없어 붓글씨에만 매달렸죠. 너무 힘들어서 몸무게가 한 달 새 3㎏은 빠졌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힘든 서예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붓글씨를 쓰기 전 약 40분에서 1시간 정도 정성을 다해 먹을 갈아요. 이렇게 먹을 갈다보면 번잡하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지요. 붓에 먹물을 듬뿍 묻혀 한 자 한 자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도(書道)를 익히게 됩니다." 일중 선생 밑에서 함께 공부했던 초정(草丁) 권창원,신계(新溪) 김준섭 등은 현재 국내 대표 서예가의 반열에 올랐다.

환갑을 넘긴 맹 구청장은 최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드럼 연주다. CD LP 등을 포함,클래식 음반만 수천 장이 넘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도 유명한 맹 구청장으로선 다소 색다른 시도다.

"처음엔 클라리넷을 했는데 입이 커서 마우스피스에 밀착이 안돼 바람이 새나가더라고요. 입으로 하는 악기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손발로 할 수 있는 드럼을 선택했죠. 그런데 이게 스트레스 해소에는 그만입니다."

맹 구청장은 토요일마다 레슨을 받는 것은 물론 매일 30분~1시간 정도 드럼을 연습하고 있다. 웬만한 유행가 정도는 가볍게 칠 수 있는 수준까지 연마할 생각이다.

맹 구청장은 그가 지닌 이런 문화ㆍ예술 DNA를 구청 직원은 물론 주민에게까지 널리 확산시키고 있다. "구 청사를 미술관처럼 꾸며놓고 나니 민원인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나 근무자세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구청을 방문하는 주민들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어요. 놀라운 경험이죠. 문화ㆍ예술은 돈 많은 사람이나 즐기는 사치재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필수재라는 증거입니다."

글=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사진=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