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신경림 '매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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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떼처럼 모인 사람들만 보고 돌아온다
광양 매화밭으로 매화를 보러 갔다가
매화는 덜 피어 보지 못하고.
그래도 섬진강 거슬러 올라오는 밤차는 좋아
산허리와 들판에 묻은 달빛에 취해 조는데.
차 안을 가득 메우는 짙은 매화향기 있어
둘러보니 차 안에는 반쯤 잠든 사람들뿐.
살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과 악취가
꿈과 달빛에 섞여 때로 만개한 매화보다도
더 짙은 향내가 되기도 하는 건지.
내년 봄에도 다시 한번 매화 찾아 나섰다가
매화는 그만두고 밤차나 타고 올라올까.
-신경림 '매화를 찾아서'전문
섬진강 순한 바람 맞으며 그윽하게 매화를 바라볼 날이 올까.
은근한 매화 향기에 이런 저런 걱정을 모두 담아 휘익 날려버릴 수도 있을까.
그런 희망을 안고 살아왔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겠다.
시인은 매화를 못 봐도 섬진강 거슬러 올라오는 밤차가 좋다고 했다.
차 안에서 반쯤 잠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악취가 매화향보다 더 진하다고 했다.
이 정도는 돼야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뭔가를 자꾸 이루려고만 한다.
살아가는 맛을 알려면 아직 멀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