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임시국회가 26일 끝났다.오는 4월 총선 일정을 감안하면 사실상 17대 마지막 국회였으나 처리하지 못해 자동 폐기되거나 18대 국회로 미뤄지는 주요 법안들이 수두룩하다.

포이즌필,차등의결권 주식 등 적대적 인수ㆍ합병(M&A) 방어 수단을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과 유류세 10% 인하를 담은 교통세ㆍ특별소비세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도 물건너갔다.

여야가 정부조직법 개정을 놓고 벼랑 끝 대치를 벌이면서 시간을 흘려보낸 데다 골치 아픈 법안들에는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민생과 경제를 활성화하자며 2월 국회 처리를 약속한 양측 간 합의는 도루묵이 돼 버렸다.

◆제대로 심사나 했나…128건 벼락 처리

"도대체 의원들을 불러 모을 수가 없었어요." 법사위 관계자는 2월 임시국회의 저조한 법안 처리 실적을 이렇게 전했다.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지루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싸움에 매몰됐고,의원들이 4ㆍ9 총선 지역구 챙기기에 바빠 법률안 처리에는 도무지 관심이 적었다는 설명이다. 이렇다 보니 이날 마지막 본회의를 앞두고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법률안은 무려 128건에 달했다.폐회 직전 '벼락치기 처리'에 나선 셈이다.이 때문에 충분한 심사를 거쳤는지도 의심이 갈 정도다.

반면 지난 1월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자고 합의한 민생ㆍ경제활성화 법률 제ㆍ개정안 60건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30건에 그쳤다.

프로판가스 특별소비세를 비과세하기로 한 특별소비세법 개정안,보유 기간별 부동산 양도소득세의 특별공제율을 상향 조정하는 소득세법 개정안 등에 불과했다.

◆골치 아픈 법안은 나몰라라?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할 제ㆍ개정안이었다면 애초 합의하지도 말았어야 했다는 지적이 많다.4ㆍ9 총선에서 표를 의식,민생과 경제를 살린답시고 생색을 내려다 식언(食言)을 했으니 말이다.유류세 10% 인하가 골자인 교통세ㆍ특별소비세법 개정안의 처리 무산이 그런 경우다.

또 60개 제ㆍ개정안 중 포이즌필(신주예약권),차등의결권 주식 등의 적대적 M&A 방어 수단 도입을 담은 상법 개정안은 외국 자본 등으로부터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기업들이 그동안 절실히 요청해 왔던 숙원 법안이다.

이 밖에 지자체장이 지방투자 활성화 촉진 단지를 조성하면 재정 지원 및 조세 감면 혜택을 받는 지방투자촉진특별법과 중증장애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중증장애인기초연금법 및 4대 보험료 징수 업무를 통합하는 사회보험료부과법 개정안도 처리되지 못했다.

한ㆍ미 FTA 비준 동의안은 손학규 민주당 대표까지 나서 약속했으나 당내 농촌 출신 의원 등이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한 의원은 "상법 개정안이나 한ㆍ미 FTA 비준 동의안은 기업이나 국가경제 차원에서 양당 간 최대한 정치력을 동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다.자동 폐기 법안은 18대 국회에서 다시 제출될 수 있으나 시간과 인력을 낭비해야 한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