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과 범현대家가 경영권 향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 장외설전을 시작하면서 현대가의 경영권 쟁탈전이 재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고 정몽헌 회장이 이끌던 현대그룹 및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가 올해 인수합병 시장 주요 매물 중 하나인 현대건설의 인수 적임자를 자처하며 언론을 통해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주력 사업체인 현대상선을 통해 현대건설 인수를 강력히 표명한 현대그룹쪽이다.

지난달말 노정익 전 사장 후임으로 현대상선 사령탑에 오른 김성만 신임 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시너지가 많아 인수의지가 확고하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현대건설이 가진 건설업 전문성은 현대아산의 대북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만큼 정통성 차원이 아닌 기업가치와 시너지 측면에서 이를 봐야 한다"면서 "다만 현대건설 인수에 있어 현대상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상선의 역할을 말할 단계는 아직 아니다"고 언급했다.

이렇게 현대그룹 측이 현대건설 인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서자 범현대가인 현대중공업도 기업인수합병(M&A) 시장에서 대우조선해양이나 하이닉스반도체는 관심 자체가 없고 오직 '현대건설'뿐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강수현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지난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해양이나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서는 인수할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다"며 "현대중공업의 관심 대상은 현대건설뿐"이라고 강조했다.

5조원대에 이르는 풍부한 유보자금으로 올해 인수합병 시장 '경계 1호'로 떠오른 현대중공업그룹 고위관계자의 발언이라는 측면과 동시에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의지가 표출된 지 한달도 채 안된 시점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강 사장은 "현재 거론되는 대형 매물 중에 현대중공업그룹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은 현대건설이 유일하다"며 "현대건설은 대형 플랜트 건설 분야에서 현대중공업의 경쟁사인 만큼 인수하게 되면 현대중공업그룹의 플랜트 및 해양설비 분야에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이 대리인격을 내세워 확고한 현대건설 인수의사를 강조하고 나선 이면에는 현대건설이 향후 현대가 전체 경영권 향배의 열쇠를 쥐고 있기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대건설을 누가 차지하냐에 따라 경영권 주체가 달라질 수 있기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하게 되면 고 정몽헌 회장이 이끌던 현대그룹도 '범현대가'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난다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 현대상선의 지분구조는 현대건설이 8.3%를 소유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현대중공업 17.6%, 현대삼호중공업 7.87%, KCC 5.98%로 분포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KCC가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현대상선을 고리로 현대그룹 경영권 역시 사실상 장악게 된다는 것.

이에 대해 재계 한 전문가는 "이제 새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산업은행 자회사에 대한 매각작업도 조만간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며 "현대건설과 관련해서는 여타 기업도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현대그룹과 범현대가의 주도권 싸움이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변관열 기자 b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