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원 전쟁에서 중동과 미국의 공수가 바뀌고 있다.게임의 룰을 바꾼 것은 국제 곡물 가격 급등이다.원유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중동 산유국들이 식량 시장에선 반대로 세계 최대의 농산물 생산국인 미국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다.특히 농산물 품귀 현상에 시달리는 중동 산유국들이 '식량 안보'를 외치면서 '식량 전쟁'에 대한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수입 곡물가 상승으로 된서리 맞는 중동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식량 빈국인 중동 지역은 국제 농산물 가격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인도ㆍ파키스탄산 바스마티 쌀 가격은 지난 한 해 동안 51% 상승했다.식용유는 80% 뛰었다.인도산 양고기는 지난 1년 새 무려 115%나 치솟았다.닭고기 가격도 66% 올랐다.카타르의 경우 식품 가격 상승으로 지난해 12월 물가 상승률이 13.74%에 달했다.

UAE 정부는 식품 가격 상승을 인플레이션 주범으로 판단,지난해 바스마티 쌀의 상한 가격을 5㎏ 기준 4.90달러로 설정했다.하지만 정부가 정한 가격으로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수입업자들이 수입량을 줄이면서 쌀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쌀 가격이 70∼75% 정도 더 오르는 등 식량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 우려다.식량 가격을 잡지 못할 경우 고유가로 이룬 경제 호황이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중동과 미국 간 미묘한 신경전

중동에서 '식량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중동과 미국 간에 미묘한 '한랭전선'이 흐르고 있다.세계 곡물 시장을 미국의 메이저들이 잡고 흔드는 데다 미국 달러화 약세가 중동 산유국의 물가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중동 산유국들이 자국 통화가치를 미국 달러에 연동시키는 달러 페그제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약달러는 고스란히 수입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해수를 농업용수로 바꿔 사막에서 밀을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미국이 충분한 원유를 확보하기 위해 중동 유전에 투자하듯 안정적인 곡물 공급을 위해선 미국 농장을 사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달러 페그제 포기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지난해 5월과 6월 쿠웨이트와 시리아가 각각 페그제를 폐기한 데 이어 UAE도 폐지를 고려하고 있다.지난해 11월 개최된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상회담에서는 원유 결제수단을 달러에서 유로화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미국을 자극하기도 했다.

반대로 미국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석유를 대체할 바이오 연료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FT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사막에서 농작물을 재배하고 미국이 대체 에너지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세계 경제의 효율성 측면에선 낭비"라며 "이 같은 자원배분 왜곡 현상이 세계 경제를 비효율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자원 전쟁에 대한 우려를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