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삼성전자는 미국 내 3위 PC업체인 AST를 전격 인수했다.

AST는 인수 당시 연간 매출액이 24억달러에 달하는 '알짜배기' 회사.삼성전자는 이 회사가 미국은 물론 세계 PC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AST 인수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인수 직후부터 경영 상황이 악화했고 1997년 말 AST는 자본금 완전 잠식 상태에 빠졌다.

실패 원인은 바로 '글로벌 경영 시스템'의 부재였다.

한국식 조직문화를 곧바로 적용한 결과 AST의 고급 연구인력이 무더기로 이탈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수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본 채 1999년 AST 경영권을 포기해야 했다.

AST 인수 실패는 삼성으로 하여금 진정한 글로벌 경영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한국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으로서 어떤 조직문화와 인재 확보 및 배치,해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삼성은 먼저 '조직 DNA'를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국내 본사 위주로 진행했던 제품 개발과 판매,마케팅,브랜드 관리 조직을 글로벌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한 것. 1999년 설립된 삼성전자의 글로벌마케팅실(GMO)이 앞장서 변화를 이끌었다.

GMO는 이전까지 일관성없게 진행됐던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 및 마케팅 전략을 총괄했다.

이곳을 통해 삼성전자는 '삼성 디지털 에브리원스 인바이티드(Samsung Digital Everyone's Invited)'라는 통합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연구개발(R&D)과 디자인 부문의 탈(脫)한국화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삼성은 모든 제품 개발 및 디자인 개발 업무는 국내 본사에서 담당하고,해외에서는 생산만 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삼성은 해외에서 현지 사정에 맞는 R&D 및 디자인 개발을 독려했다.

철저한 로컬(local)화를 추진한 것.

이를 위해 런던 도쿄 샌프란시스코 뉴욕 파리 밀라노 상하이 등 7곳에 디자인센터를 설립했다.

중국(쑤저우,항저우,베이징)과 인도(방갈로르),일본(센다이) 등에 R&D센터도 세웠다.

아울러 능력 본위의 직급체계도 강화했다.

2000년부터 도입한 'PS(초과이익분배금)' 제도가 대표적이다.

PS는 한 해 성과 달성 여부에 따라 각 사업부(회사)별로 연봉의 최대 50%까지를 일시불로 지급하는 삼성의 대표적인 인센티브 제도다.

종전까지 연공서열 중심이던 조직문화를 바꿔 해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성과주의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근무 방식도 글로벌 수준에 맞게 손질했다.

1993년부터 '7.4제(오전 7시 출근.오후 4시 퇴근)'를 원칙으로 했다가 2000년부터 탄력근무제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디자인 조직이나 연구개발 조직의 경우 업무 특성에 맞게 출.퇴근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삼성은 조직DNA 혁신에 이어 인적자원 DNA에 대한 변화도 추구했다.

우선 현지 채용인의 활용도부터 바꿨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해외 현지법인의 마케팅 업무만 맡았던 해외 인력들을 1990년대 중반부터는 재무,기획,R&D 분야 등 요직에도 중용했다.

능력만 충분하다면 국내 본사에도 외국인 임직원을 대거 배치했다.

삼성전자는 1990년대 초반까지 100명 안팎이던 외국인 임직원 수를 최근엔 500여명까지 늘렸다.

글로벌 인재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각 계열사 사장들이 직접 나서 해외 각 대학을 돌면서 우수 인재를 인터뷰하고 채용했다.

한발 나아가 삼성전자는 2005년부터 창사 이래 처음으로 해외 각지에서 대졸 신입사원(3급)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체질 개선 결과 삼성은 세계 56개국에 124개의 법인 및 지사를 갖추고 5만9000명의 해외 임직원을 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