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여주인공

섹시한 포즈도, 귀여운 눈웃음도 없다.

화장기 하나 없이 주근깨를 그대로 드러낸 '쌩얼'에 중성적인 옷차림의 송수정 PD가 있을 뿐이다.

미국ㆍ홍콩ㆍ프랑스의 글로벌 프로젝트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촬영 후 1주일 만에 출연을 결정했던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감독 정윤철, 31일 개봉)에서 전지현은 인간을 불신하는 휴먼 다큐멘터리 PD 송수정으로 등장한다.

송수정은 관객과 비슷한 눈높이에서 자신을 슈퍼맨이라고 믿는 한 남자(황정민 분)를 지켜본다.

"슈퍼맨은 옛날 사람이고, 송수정은 현대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다 저러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슈퍼맨을 그렇게 특별한 인물로 보지 않았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 요즘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잊고 살았고 남을 돕는 행동을 되레 창피해하고 있을 뿐이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송수정 역을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누군가 하는 착한 행동을 두고 관객의 생각만큼 생각하면 되겠지, 그래서 처음에는 쉽게 묻어가려고 했어요(웃음). 그런데 제가 그저 묻어가기만 한다면 관객에게 주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송수정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황당한 한 남자의 착한 행동을 정신병자 취급하다 점점 그의 진심을 알게 되고, 마침내 그의 아픔까지 들여다보는 인물이다.

영화는 초반엔 가볍고, 중반 이후 묵직해진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메시지나 전달하려는 방식이 가볍지 않아 좋았습니다.

메시지가 살아 있으면서 황정민이란 배우를 만났을 때, 그리고 정윤철 감독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했죠."

그는 "국내 활동은 자주 하지 않았지만 배우로서 기본 활동 영역은 한국이고, 한국에서 인정받아야 응원의 힘을 얻을 수 있어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촬영 후 1주일 만에 합류했다"고 한다.

김태희가 설경구와 함께 한 '싸움'에서 저조한 흥행 성적과 함께 날카로운 비판의 잣대로 평가받은 바 있다.

전지현은 김태희보다 더 먼저, 그리고 더 오랫동안 'CF퀸'으로서 입지가 강한 배우. 이는 CF 이미지로 인해 상대적으로 배우로서 평가에 인색한 주변의 시선을 더 먼저, 더 오랫동안 받아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광이기도 하고 부담이기도 한 'CF퀸' 타이틀을 얹고 있는 전지현은 세월이 흐르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처신하는지 궁금했다.

에둘러 돌아온 그의 답변은 여유로웠고, 자연스러웠다.

"다 좋아요.

전 뭐든 다 잘하고 싶고,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싶습니다.

'슈퍼맨…' 한 편하고 영화 그만둘 것도 아니잖아요.

전 대중과 한 시대를, 한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배우로 살아가고 싶어요.

나이 들고 성숙해지면서 점점 더 나아지겠죠. 다행히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어 감정의 깊이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무척 행복합니다.

배우로서 나이를 먹는 게 기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고요.

어떤 말을 들어도, 어떤 질타를 받아도 전 여유가 있습니다.

기본 생활에 충실하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잘 돌아볼 줄 알아야죠."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되돌아봐왔던 것 같다.

"어려서는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쁜 욕심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게 마음을 비우는 건데 전 다행히 자연스럽게 비우며 살았던 거죠. 살아올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데 진짜 잘 비울 수 있을지, 유혹을 잘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부담을 가지면 안되죠. 규칙적으로 살면 제 자신에게 뿌듯해지고 저절로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파트너이자 선배인 황정민에 대해서 표현하는 방식도 자유롭고 솔직했다.

"뭔가 특별한 게 있는 줄 알았고, 그래서 이번에 나 죽었다고 생각했다"는 전지현은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특별한 게 없네…그랬는데 영화를 보니 아무것도 아닌 연기 같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말했다.

"정민 오빠가 한 커트를 3일 동안 34번을 찍었던 적이 있었어요.

제가 보기엔 그 전 연기와 다음에 하는 연기의 차이를 못 느끼겠고, 감독님과 오빠가 말하는 게 도대체 뭘 말하는지도 몰랐죠. 그런데 3일 동안 황정민을 지켜보는 스태프들의 믿음을 알게 된 순간 정말 놀랐어요.

'저 배우가 저렇게 말하면 뭔가 다른게 나오겠지'라며 신뢰하는 스태프들의 눈이라니. 그건 오빠가 쌓아온 길에 대한 믿음이겠죠. 사실 '정민 오빠도 34번 테이크를 가는데 나도 저렇게 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해 편해진 것도 있어요(웃음)."

그에겐 정윤철 감독이 슈퍼맨이었다고 한다.

연기를 하는 동안 어떤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처음으로 제 자신이 연기하면서 창피하지 않았던 작품이에요.

될 때까지 하려고 노력했죠. 어떤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가볍게 웃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럴 때는 감독님이 '뭘 하려고 하지마. 그냥 웃어'라고 말씀해주시더군요."

영화 속 '슈퍼맨'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주길 바랄까.

"제가 이 영화를 찍으며 슈퍼맨의 의미가 달라졌듯 관객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많은 메시지를 주니 '그래서 어쩌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걸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걸 말하는 기분 좋은 이야기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