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ㆍ옌타이 한국기업 왜 야반도주하나‥경영악화에 청산비용 감동못한 '고육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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稅 혜택 등 모두 토해내야
옌타이 시내 음식점에서 만난 섬유업종에 종사하는 한국인 사장 7명은 "답이 안나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영은 어렵고 그렇다고 청산하자니 그마저 여의치 않다는 것."봉제 의류 등 노동집약적 산업의 기업들은 퇴로가 차단된 채 어쩔 수 없이 공장을 돌리고 있다"는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
야반도주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회사가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작년 칭다오시에서 청산 절차를 밟은 회사는 31개사지만 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87개사가 야반도주를 택했다.
◆배보다 더 큰 청산비용=칭다오 자오저우 지역에서 방직기계 제조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W사장.그는 청산을 하려다가 매각으로 방향을 전환해 원매자를 찾고 있다.
2004년 150만달러를 투자해 시작한 공장은 현재 적자는 근근이 면하는 수준이다.
그는 "종업원은 80명 수준으로 한때 매출이 1000만달러까지 올랐지만 경영 환경 악화로 수요처가 있는 동남아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W사장은 작년 말 세무국에서 일하는 친한 중국인에게 이전을 위해 청산을 하면 어떻겠는지 자문을 구했다가 "하지 말라"는 냉정한 답을 얻었다.
투자한 지 10년이 넘지 않았기 때문에 외자기업 자격으로 받은 모든 혜택을 다시 반납해야 한다는 것.공장 설립 때 면세로 들여온 설비는 도입 당시 금액을 기준으로 관세 33%를 내야 한다.
환급 받은 부가가치세는 물론 2년간 면제 받은 뒤 현재 50%만 내고 있는 기업소득세도 모두 소급해서 다시 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중국 회사보다 절반 정도로 깎아줘 한 달에 1만위안도 안 나왔던 수돗물 값도 다시 계산해서 내야 할 것이라는 데는 어이가 없었다.
한국도 외자기업이 계약 완료 전에 철수하면 특혜를 준 것을 돌려받지만 이처럼 한톨도 남김없이 고스란히 내놓고 가야 할 줄은 몰랐다고 발을 굴렀다.
W사장은 "더 큰 문제는 관계당국의 조사"라고 말했다.
그는 세무당국이 심한 경우 원재료 구입 물량과 생산품의 수량을 비교해 일치하지 않으면 탈세로 간주한다는 소리에 청산을 포기했다.
게다가 설비는 국외 반출이 금지돼 있어 베트남에 가려면 새로운 장비를 사야 한다.
공장을 정리해봐야 세금을 내고 부채를 갚기도 어려울지 모르는데 어떻게 신규 공장을 짓겠느냐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기약 없는 청산 절차=중국의 청산 절차는 법적으로는 간단하다.
최장 270일 안에 임금과 부채를 청산하고 관계부서의 조사를 받으면 끝난다.
그러나 법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옌타이에서 만난 박기춘 상해교역 사장은 "가장 좋은 청산 방법은 돈을 한푼도 안 받더라도 회사를 통째로 넘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청산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청산 신청부터 벽에 부닥친다.
신고서 접수가 하루 만에 될지 한 달이 걸릴지 모른다.
세무국 환경국 등 관련 기관의 순차적 조사도 걸림돌이다.
특히 중국 관리들의 자료 제출 요구를 무시하거나 불성실하게 대응할 경우 괘씸죄에 걸려 몇 달씩 불려다니고 조사 받는 경우도 있다.
칭다오 S기계 P사장은 "작년 12월 청산작업을 하던 회사가 1년여 만에 채권단과 어렵게 합의해 정산하고 세금까지 다 냈지만 결국 해관(세관)에서 또 문제가 생겨 청산이 완료되지 못하자 진이 빠진 사장이 청산 중간에 몰래 도망갔다"고 말했다.
칭다오 영민기계 박성우 사장은 "외자기업이 철수한다고 하면 중국 사람들은 일단 돈을 빼돌렸거나 아니면 벌 만큼 벌고 손을 턴다는 곱지 않은 시각을 갖는다"며 "여기에 외자기업 철수로 실적에 악영향을 받을 것을 걱정한 공무원들이 가급적 청산을 어렵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관시(인간관계) 경영'의 한계=한국 기업 1만2000개가 진출한 칭다오나 8000개가 입주한 옌타이에는 한국인 회계사나 변호사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복잡한 중국 법을 공부한 사람도 적지만,수요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이곳의 한국 기업은 섬유 봉제 의류 등의 업체가 60~70%를 차지하고 대부분 종업원 50명 안팎의 영세 회사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중국 비즈니스의 모든 것은 관시 하나로 다 해결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박기춘 사장)이다.
옌타이에서 종업원 48명을 두고 봉제 공장을 한다는 한 기업인은 "사실 그동안 편법으로 경영을 해온 것이 있는데 청산에 들어가면 이런 것들이 드러날까봐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칭다오 안교석 회계사는 "청산이나 파산 등을 두려워한 나머지 절차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부도 등으로 출국하지 못해 노숙자로 전락하는 기업인도 있다"며 "중국 법이 복잡하고 애매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법률에 근거해 대응한다면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칭다오ㆍ옌타이=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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