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제포럼에서 외국인 두 사람을 만났다.유망한 사업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 잘하면 수천억원대 비즈니스도 가능할 것이라고 소개를 받은 터라 잔뜩 기대에 부푼 상태였다.한 사람은 40대 프랑스 벤처기업가였다.그러나 30여분 인터뷰를 하면서 실망만이 커갔다.이미 우리나라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서비스인 포인트제도,마일리지와 같은 아이디어였다.

두 번째 인터뷰를 한 인물은 60대 미국인이었다.세계적인 연구기관의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경력에도 불구하고 인상은 인터넷이나 디지털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대화도 별 기대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이 사람 역시 국내에서 이미 상용화된 비즈니스와 유사한 아이디어를 자랑삼아 얘기했다.전혀 사업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다음 날 마침 문제의 두 사람과 같이 차를 마시는 기회가 생겼을 때 솔직히 털어놨다."미안하게도, 당신네들 아이디어는 이미 한국에서 상용화된 지 오래다.사업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들의 반응은 그러나 전혀 뜻밖이었다.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빙긋 웃더니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한국에서만 상용화됐을 뿐이지요.우리는 전세계를 상대로 산업표준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1,2년도 안 걸릴 겁니다."

완전히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왜 판도라TV라는 동영상 사이트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놓고도 세계 시장은 유튜브에 내줄 수밖에 없었는지,왜 이미 싸이월드 아이러브스쿨 네이버 등이 있는데도 세계 1위 자리는 후발의 미국업체들인 마이스페이스닷컴 페이스북닷컴 위키피디아 등에 각각 뺏길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글로벌 시대의 승부는 기술이나 자본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바로 포부와 시각에서 나는 것이다.

전문가 가운데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인구가 2억명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그 정도가 돼야 내수가 튼튼하고 그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경쟁력도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그러나 글로벌 시대, 특히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진 이 시대에는 국경 내의 인구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인구가 적은 나라라도 세계를 상대로 쉽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된 만큼 기회는 늘어난 것이다.문제는 이렇게 세계 속으로 기회가 열리고 있는데도 그런 시야가 여전히 부족한 현실이다.

세계로 향한 마인드는 사실 '위'에서부터 열려야 한다.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2003년 취임 직후 순방한 나라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고 등이었다.그 다음 순방지는 태국 호주 뉴질랜드였다.공통점이 무엇인가.바로 세계의 자원 대국들이다.중국이 세계 자원 시장에서 큰 손이 된 것은 이렇게 글로벌에서 기회를 찾은 덕분이었다.

네덜란드가 17세기에 해상왕국이 됐을 때,인구가 150만명에 불과했다.그러나 바다와 세계로 나가려는 마음이 컸다.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주식거래소,은행을 만들게 됐고 강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총리 후보의 자격으로 '글로벌'을 들었다고 한다.이를 계기로 우리 경영계에도 골목대장형 리더십이 사라지고 세계를 상대로 한 통큰 리더십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