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체가 선진국에 의약품을 수출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의약품을 미국 등에 수출하려면 의약당국이 임상시험자료 등 갖가지 서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중소제약업체가 선진국에 규정의약품으로 등록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이같은 선진국의 비관세장벽으로 인해 국내 제약업체들은 선진국 수출을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비관세장벽을 독특한 마케팅전략으로 뚫어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대규모 수출계약을 맺은 기업이 있다.

에스텍파마(대표 김재철)가 바로 그 기업이다.이 회사는 천식치료제 알콜중독치료제 등을 생산하는 전문의약품 제조업체다.에스텍파마는 지금까지 당뇨병치료제인 글리메리피드 등 완제의약품을 선진국에 대량 수출하려했으나 선진국의 비관세장벽에 계속 걸렸다.그러자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의약완제품'을 수출하지 말고 '원료의약'을 수출하기로 한 것이다.다시말해 '자동차'수출이 비관세장벽에 걸리자 조립하지 않은 '부품'을 수출하기로 한 셈이다.

에스텍파마의 수출전략은 완전히 적중했다.덕분에 일본 다이요에 천식치료제(PLK) 2194만 달러어치를 8년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또 프랑스의 바이오가란에 알콜중독치료제(APS) 592만 달러어치를 수출키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가 완제의약품 대신에 의약원료를 수출하는 전략으로 바꾼 지난해 2월 이후 10개월만에 3173만 달러어치의 의약원료 수출 계약을 맺는 성과를 거뒀다.

전략의 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올들어 이미 미국 독일 호주 등에서 수출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특히 세계에서 2번 째로 개발한 알콜중독치료제인 아캄프레세이트의 주문이 급증하고 있다.미국의 TPN과 콘트랙파머컬 타로 등 3개사와 호주의 메드레이치 등 4개사가 5년간 총1462만 달러어치를 공급해줄 것을 요청해왔다.독일의 AET는 간질치료제인 토피라메이트를 660만 달러어치를 주문해왔다.또 독일의 메다는 소염진통제인 에세메타신 385만달러어치를,독일의 메디트는 단층촬영(MRI)조영제 250만 달러어치를 각각 사가겠다고 요청해왔다.올해만 에스텍파마가 주문받은 총수출 규모는 2757만 달러에 달한다.

김재철 에스텍파마 대표는 "선진국으로의 수출이 이처럼 급증하게 된 것은 완제품 수출을 할 경우 동물학적 동등성시험 등의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이를 구비하는 시간과 비용을 신의약 연구개발비로 돌려 새로 만들어낸 의약원료를 수출하는 전략을 전개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지난해 R&D투자비가 매출액 대비 14%나 됐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R&D투자로 인해 알콜중독치료제인 아캄프로세이트와 MRI조영제인 GDM, 천식치료제인 프란투카스트, 빈혈치료제인 폴리사카라이드 등 4개 품목을 세계에서 2번째로 개발해내는 성과를 일궈냈다.

자체 기술로 개발한 원료의약품에 대한 수출주문이 계속 들어오자 에스텍파마는 적기 공급을 위해 경기 화성 발안산업단지안에 최근 전문의약품 공장을 지었다.총 210억원이 투입된 이 공장은 대지 1만1042㎡에 연면적 1만300㎡ 규모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제정한 우수약품제조 관리기준인 C-GMP를 획득했다.이 공장은 오는 3월말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이번에 새로 건설된 발안공장은 도원건설(회장 윤해균)이 설계에서 엔지니어링과 시공까지 일괄도급방식으로 이뤄졌다.

발안공장은 생산공장이라기보다 첨단연구소를 연상시킨다.공장 안에 원료의약품 개발을 위한 품목별 연구실이 설치돼 있다.창밖이 내다보이는 조용한 자리에서 아이디어를 창안해낸 뒤 이를 실험해보기를 원할 땐 방문하나만 열면 실험실로 연결되는 구조다.연구원들이 함께 연구를 하면서도 각각 개인연구실을 가진 것처럼 자유롭게 창의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한 것.또 개발한 신물질을 연구원 자신이 직접 생산해낼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김 대표는 "발안공장과 연구실에서 올 상반기중 비만치료제인 오를리스태트를 개발해내면 이 곳에서만 1000만달러 규모의 수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에스텍파마는 브릭스(BRICs)지역에 대한 수출도 늘리기로 했다.이미 브라질의 메들리 등 8개사,인도의 란박시 등 3개사와 각각 거래계약을 맺었다.중국은 지우파이 등 3개사와 거래를 시작했다.이 회사는 지난해 공장건설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지난해 매출 185억원 가운데 22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에스텍파마는 국내에서도 유한양행에 당뇨병치료제,SK케미칼에 발기부전치료제,대웅제약에 위궤양치료제,환인제약에 알콜중독치료제,광동제약에 위장관조절제 등을 공급하고 있다.김 대표는 "회사를 세계적인 원료의약품 생산업체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