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윤수)이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출신 설치미술가 마르셀 뒤샹(1887~1968년) 작품 '여행용 가방'의 구입가격이 실제 거래가격보다 10배 가까이 높게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이 작품 구입과정 등에 대한 감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작품은 1941년 제작된 뒤샹의 설치 작품으로 39×34×7㎝ 크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05년 미국 뉴욕에서 사업을 하는 소장가로부터 62만달러(한화 약 6억원ㆍ보험료,운송비 포함)를 주고 구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미술전문가들은 작품가격이 6000만~1억원 수준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1971년 이후 수집한 미술품 가운데 가장 비싸게 사들인 작품이다.

'여행용 가방'은 뒤샹 생전에 총 50점을 제작했지만 사후 제작물까지 합하면 300여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제 미술시장에서 작품성과 제작 시기에 따라 가격이 7개 등급(A~G)으로 나눠 유통되고 있으며 A급은 점당 8억~12억원,B급은 3억~6억원,C~E급은 5000만~1억원대다.

감사원은 이 작품의 구입 경로를 비롯해 가격산정 근거,위작 여부,소장가와의 뒷거래 의혹 등에 대해 감사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이 작품의 구입 경로와 가격 산정 등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입증할 만한 미국 감정기관의 재감정 확인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미술관 측에 전달한 상태다.

이에 따라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을 이달 말까지 미국의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에 맡겨 재감정을 받아야 할 입장이다.

만일 이 작품이 1억원 미만의 C~E급 작품으로 판명날 경우 국내 최대 미술품 수집,전시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술평론가 조은정씨는 "이 작품은 공식적인 수입 통관절차를 거친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국가기관이 관세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작품의 질도 가죽 가방이 없기 때문에 국제미술시장에서 6000만원에 살 수 있는 D급 수준인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뒤샹 작품세계를 연구해온 미술평론가 김영호씨는 "뒤샹 생존 당시 작품의 상자가 때때로 가죽으로 제작됐지만 이 작품은 가방이 나무재질로 돼 있다"며 "뒤샹이 직접 제작한 것인지를 재감정을 통해 확인하면 가격 문제도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윤수 관장은 "이 작품이 1980년대 초 서울 평창동의 서울미술관 임세택 관장이 소장한 작품과 동일한 작품으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실제와는 다르다"며 "미국 뉴욕에서 사업을 하는 소장가로부터 직접 구입했으며 뒤샹의 작품 중 수작(A급)에 준하는 B급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이 작품은 뒤샹전문가 프란시스 노이만이 보증을 섰다"고 덧붙였다.

한편 감사원은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해 지난해 11월 기관운영 감사를 한적은 있지만 뒤샹 작품과 관련된 특별감사는 한적이 없다고 밝혔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