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부장, 애 이름 짓기 힘들면 나하고 같이 단골 철학관에나 같이 한번 가보지. 어차피 연초도 됐고 해서 올 한해 우리 집 안 재운(財運)도 점검해볼 겸 가보려던 참인데…"

필자가 작년 연말 셋째 아이를 본 뒤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오래된 고객이 이런 제안을 해왔다.

중견 사업체 최고 경영자(CEO)의 부인인 이 고객은 재테크와 관련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단골 철학관을 찾곤했다.

10년 이상된 습관이란 것이다.

이 고객만이 아니다.

수백억원대의 자산을 굴리는 '큰손'들 가운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점집에서 최종 결심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프라이빗 뱅커(PB)로 근무한 지 5년이 넘은 지금,그동안 고객들의 손에 이끌려 철학관을 찾은 적이 한두 차례가 아니다.

때문에 1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점집을 찾는 횟수가 평균 4∼5번 정도 되는 것 같다.

점집을 즐겨 찾는 강남 아줌마들 가운데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들은 남편 모르게 점집을 찾아 자식들의 결혼운이라든지,재테크 방향에 대한 점쟁이들의 조언을 구한다.


중소 부동산 시행업체에서 시작해 지금은 시공능력 평가순위 50위권 내에 드는 중견 건설사를 운영하고 있는 A씨 역시 마지막 의사결정은 점집에서 내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그는 "아파트를 분양하기 위해 부지 매입작업을 다 끝내면 최종 계약에 앞서 항상 점집을 찾는다"며 "건설업계에서 땅 작업 끝내고 점집 찾는 오너들이 굉장히 많다"고 전했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역술가의 얘기를 들어보는 건 사실이지만,그렇다고 해서 꼭 역술가 말대로 하는 것은 아니죠.사업성에 대한 우리 회사 직원들의 분석을 전적으로 신뢰하니깐요.다만 내가 내리는 결정과 역술가의 얘기가 같을 때는 사업의 성공에 대한 확신이 더욱 강해지는 심리적인 효과가 있어서 좋아요.요컨대 역술가의 조언은 참고사항일 뿐 필수적인 고려사항은 아닌 셈이지."

'재테크=과학'이라는 공식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PB입장에서 왠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점쟁이들의 충고를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강남 아줌마들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든 게 사실이었다.하지만 '투자의 귀신이라는 부자 고객들이 10년 이상 꾸준히 철학관을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역술 재테크를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자 '역술가들이 전혀 근거 없이 떠드는 것만은 아니구나'라는 사고가 들기 시작했다.역술가들이 전해주는 돈 많이 버는 방법은 대부분 그의 말을 따라하면,부자가 될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수백억 자산을 보유한 한 고객의 소개로 만난 풍수지리가 B씨의 조언이 대표적인 사례다.그는 "집안 내부의 인테리어를 풍수에 맞게 잘 개조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그러면서 "부자가 되고 싶으면 현관부터 깨끗이 치우라"고도 했다.외부의 기(氣)가 내부로 들어오는 현관이 지저분하게 돼 있을 경우 기가 이곳을 지나면서 오염돼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A씨는 "실제 부잣집 치고 윤이 나지 않는 현관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씨는 현관이 지저분한 집안에 돈이 모이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회사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빨래가 굴러다니는 것을 보고 짜증내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그래서 본인의 기분이 나빠져 인상을 쓰게 되면,가족들도 덩달아 짜증을 내게 되고….이런 상태로 밖에 나가면 또 일이 제대로 되겠습니까.반대로 깨끗한 현관을 보면서 출근하면 기분 좋은 상태에서 하루를 출발하게 되고,웃는 얼굴로 일을 하다보니 상사나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일이 술술 풀려서 돈도 잘 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일리있는 얘기다.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재테크라는 게 운이라기보다는 과학에 더욱 가까워 점쟁이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게 필자의 기본적인 생각이다.때문에 끊임없이 발품을 팔고,분석해서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투자에 나서는 게 중요하지 점쟁이의 말에 좌지우지 돼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이해되는 조언이라면 점쟁이 얘기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할 일만도 아니다.결국 과학적 분석과 노력이 주가 되고,점쟁이의 조언을 자신만의 판단 기준에 따라 걸러 들을 수만 있다면,올 한 해 재복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을까 한다.

<최철민 미래에셋증권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