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업분야의 전환 ④ 신흥시장을 활용하라

"인도가 미국을 제치고 노키아에 두 번째로 큰 시장이 됐다."

지난해 8월23일 인도 뉴델리.노키아의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 최고경영자(CEO)는 기자회견을 갖고 2007년 2분기 인도 시장 매출이 미국을 앞섰다고 공표했다.

당초 노키아는 2010년께나 가야 인도가 미국을 제치고 중국 다음의 시장이 될 것으로 내다봤었다.

시점이 3년이나 앞당겨진 셈이다.

노키아 인도법인은 지난해부터 매달 600만명이 신규 가입하는 폭발적 성장세속에 2006년 영국,2007년 미국을 따라잡았다.

노키아는 이 같은 인도 시장을 80%에 육박하는 점유율로 휩쓸고 있다.

칼라스부오 회장은 "인도의 휴대폰 사용자 1억8500만명 중 8500만명이 노키아를 쓰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기자회견장은 신흥시장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CEO가 현지를 직접 찾은 것도 이 같은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었다.

놀라운 성적은 2007년 3분기에도 이어졌다.

노키아는 3분기에 세계 2~4위인 삼성전자 모토로라 소니에릭슨의 판매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1억1120만대를 팔아 40%에 육박하는 세계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인도 중국 브라질 러시아에서의 판매량이 7670만대(68%)에 달했다.

사친 사세나 노키아 인도공장장은 "인도의 휴대폰 가입자가 2억명에 이른다지만 전체로 볼 때 가입률은 15%에 불과하다"며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신흥시장 중 가장 폭발력 있는 성장세를 구가하는 인도엔 노키아와 같이 5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앞세워 모기업을 먹여살리는 다국적기업이 많다.

마루티스즈키(자동차) 힌두스탄유니레버(생활용품) 히어로혼다(오토바이) 등이 그들이다.

일본 스즈키가 54.2%의 지분을 가진 마루티스즈키는 2006년 인도 자동차 시장의 50.4%를 점유,22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2007년 상반기(3~9월) 인도시장 매출은 일본시장 매출을 처음으로 앞섰다.

영국계 힌두스탄유니레버도 샴푸 세제 비누 식품 등 20여개 생필품에서 20~60%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누리며 인도에서만 한 해 30억달러의 매출을 올린다.

특히 매년 경제가 9%가량 크면서 2025년엔 중산층만 호주 인구보다 많은 583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맥킨지&컴퍼니,2007)되는 인도다.

이들이 모기업 성장의 핵심이 될 것임은 명확한 일이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일찌감치 인도를 '기회'로 인식했단 점이다.

사세나 노키아 공장장은 "1995년 인도에서 이동통신 전파가 처음 쏘아졌을 때 쓰인 제품이 노키아였다"고 강조했다.

즉 일찍부터 시장 잠재력을 보고 유통망 등에 투자해 왔다는 것이다.

현재 인도 전역에 있는 9만5000개의 휴대폰 대리점 중 9만개가 노키아 제품을 팔며, 그 중 5만개는 노키아만 판매하고 있다.

힌두스탄유니레버는 1931년에 들어왔다.

마루티스즈키는 1981년 외국 자동차 회사의 진출이 금지되던 1981년에 인디라 간디 전 수상의 아들인 산자이 간디를 통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물류가 불편한 인도에서 먼저 유통망을 개척하고 브랜드를 알렸다는 것은 큰 강점이다.

특히 인도인들은 카스트 제도 탓인지 애국심이 강하지 않아 외국 브랜드가 사랑받는다.

허노식 삼성전자 첸나이 공장장은 "인도에는 먼저 들어온 기업이 시장을 다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두 번째는 저가품에 강하며 다양한 모델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노키아의 베스트셀러인 1110i 모델은 흑백 LCD에 통화 기능 외엔 다른 기능이 없어 가격이 1300루피(32달러)에 불과하다.

용역업체 직원인 사라 라난씨(39)는 "휴대폰을 세 번 바꿨는데 노키아만을 쓴다"며 "값이 싸고 사용하기 쉬워서 좋다"고 말했다.

노키아는 이외에도 1600루피(40달러)대의 1112모델 등 59개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

힌두스탄유니레버는 샴푸를 첫 출시했을 때 한국에선 샘플로 쓰이는 작은 플라스틱백에 담아 단돈 1루피(24원)에 팔았다.

람 라모한 힌두스탄유니레버 매니저는 "돈이 없는 인도 소비자에게 접근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이를 통해 샴푸를 접해본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시장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마루티스즈키도 마찬가지.오토바이를 몰던 인도인이 가장 먼저 접했던 차가 마루티스즈키의 모델 800이었다.

800㏄ 모델은 가격이 19만루피(4700달러) 정도로 1000㏄ 미만 시장(전체 승용차 시장의 6%)을 독점한다.

또 1000㏄대에선 스위프트 젠 알토 웨곤R 등 4개 모델을 내놓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상트로의 뛰어난 품질에도 불구하고 5년째 점유율이 20%를 넘지 못한 이유다.

송현섭 현대차 첸나이 공장장은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기 위해 지난해 10월 인도 전용모델인 i10을 출시했다"며 "2008년 시장점유율은 20% 후반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셋 째는 현지화다.

프라사드 프라드한힌두스탄 유니레버 부장은 "성공의 열쇠는 '인도에 좋은 것은 유니레버에도 좋은 것이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철저히 현지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힌두스탄유니레버의 경우 1970년대 인도 정부가 화학산업 육성을 원하자 유니레버에선 처음으로 화학공장을 세워 키운 뒤 현지 기업에 매각했다.

타타케미컬이 그 회사다.

노키아의 경우 3년 전부터 방갈로드 디자인센터 등 연구개발(R&D) 시설을 3곳이나 세워 인도인 입맛에 맞는 휴대폰을 개발해왔으며 2006년 1월 현지공장을 가동해 매달 500만대를 쏟아내고 있다.

뭄바이ㆍ첸나이(인도)=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