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처럼 범람한 서브프라임 손실 속에서/고액 연봉자들마저 해고의 칼바람을 맞았고/신용시장의 위기는 벤 버냉키의 주름살을 늘렸네/파국을 막을 묘수는 어디쯤에 있는가."

노무라증권 뉴욕지점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레슬러는 최근 이런 내용의 짧은 시를 친구와 고객 1000여명에게 보냈다.

"정곡을 찔렀다" "모처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등 칭찬 메시지가 여러 곳에서 날아왔다.

지난 24년간 매년 그 해를 상징하는 풍자시를 써온 레슬러는 올해의 시제(詩題)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정했다.

그는 "매년 시의 주제를 정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는데 올해는 매우 쉬웠다"며 "올해처럼 한 가지 사안이 금융시장을 크게 지배한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미국 월가 금융인들 사이에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주제로 한 풍자시가 유행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4일 이런 현상을 소개하면서 '빚진 시인의 사회(Debt Poets Society)'라는 제목을 붙였다.

톰 슐만의 교육소설이자 국내에서도 큰 흥행을 기록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를 빗댄 표현이다.

'Dead'라는 앞 단어를 비슷한 발음의 'Debt'로 살짝 비튼 것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합작은행인 포르티스(Fortis) 런던지점에서 외환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캐머런 크라이스는 주된 시어(詩語)로 '자산담보부증권(CDO)'을 선택했다.

신용위기의 주범이 CDO라는 생각에서다.

시의 제목은 '브로커 조'라고 달았다.

"여기서든 저기서든/아니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난 당신의 CDO를 원하지 않아요/정말 좋아하지 않아요,브로커 조(Joe)." 부실 증권인 CDO를 고객들에게 팔아넘기려고 노력하는 금융인을 꾸짖는 내용이다.

크라이스는 "내가 거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브로커 조 같지는 않다.

그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라는 해명을 풍자시 말미에 달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월가에서는 특정한 위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풍자시로 만들어 돌려 보는 것이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다"며 "올해는 전 세계 금융가를 곤경에 빠트린 신용위기를 주제로 한 풍자시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