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확정한 법학적성시험(LEET)의 논술영역 시험 방식에 대해 적절성 시비가 거세게 일고 있다.

평가원 방식으로 논술시험을 치를 경우 문학 사학 철학에 대한 고담준론식 답변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여 냉철한 법학 적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평가원이 20일 공개한 논술영역 예시문항 4개 문제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의 인문계열 대입 논술과 매우 흡사하다.

1번 문항(200~400자)은 정도전의 '삼봉집',데카르트의 '방법서설' 등의 지문을 주고 핵심 주제를 비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번 문항(300~500자)은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의 지문을 바탕으로 살비아티라는 가상인물의 주장을 평가할 것을 주문한 문제다.

3~4번(3번 500~700자,4번 1300~1500자) 문항은 존 롤스의 '정의론'과 마이클 왈저의 '정의의 영역들' 등의 지문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여부를 물은 후 지역할당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거를 지문에서 찾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평가원의 논술 문항은 미국 등 법학적성시험의 역사가 긴 나라들의 논술 문제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미국의 경우 실생활에서 선택을 요구하는 상황을 주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라는 내용의 논술 문제를 로스쿨 입학 시험 문제로 출제한다.

법조인은 사회적인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능력을 논술을 통해 파악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논술에선 '장점이 서로 다른 두 명 신입사원의 조건을 주고 어떤 사원을 선발할 것인가' '경제 침체와 시민 생활공간 부족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도시가 빈 땅을 상업지구로 개발할지 공원으로 개발할지 여부를 결정하라' 등의 문제가 출제된다.

호문혁 서울대 법대 학장은 "로스쿨 논술이 대입 논술과 똑같아서는 곤란하다"며 "평가원의 로스쿨 문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우정규 다산로스쿨 원장도 "시험의 출제 방식을 바꿔야 문제의 적절성과 공정성이 확보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역할당제를 정당화하라는 4번 문항을 놓고 이념적으로 편향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LEET의 논술문제가 예시문항처럼 출제될 경우 대학들이 반영 비율을 줄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법학적성시험의 영역별 반영 비율 등은 로스쿨 인가를 받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날 공개된 LEET 예시문제에는 논술 외에도 객관식으로 출제되는 언어이해와 추리논증 영역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두 영역은 5지선다의 객관식 문항들로 이뤄져 있다.

문제의 패턴은 행정ㆍ외무고시 등에 활용되는 PSAT(공직적격성평가)와 흡사하다.

언어이해는 인문,사회,과학,기술,문학,예술 분야의 소재를 활용해 어휘력,분석력,추론능력 등을 측정하는 영역이다.

논술 영역과 마찬가지로 긴 제시문을 주고 제시문의 논리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 문항 등이 예시문제로 출제됐다.

추리논증 영역에서는 도형이나 도표 사례 등을 분석할 수 있는지 논리적 판단력이 있는지 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나왔다.

수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문항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 평가원, 예시문제 공개 >

언어이해 예시문제

‘크리스텐슨’이 <보기>와 같은 동료의 말에 착안하여 ㉠을 연구했다고 할 때, 그가 주목한 ㉠의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기> 유전학자들은 인체를 대상으로 연구하길 꺼린다네.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기까지는 30년이 걸리기 때문에 어떤 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는 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그래서 그들은 단 며칠이면 알을 배고, 태어나서 성숙하고 죽는 초파리로 연구한다네.

① 기술적 내용에 대한 이해가 비교적 쉽다.
② 고객이 증가하는 속도가 무척 빠른 산업이다.
③ 연구 대상으로 적합한 30여 년의 역사를 가졌다.
④ 기술 변화와 기업의 흥망이 빈번하게 진행되어 왔다.
⑤ 컴퓨터 등 다른 산업의 발전에 불가결한 부품 산업이다.

추리논증 예시문제

어느 모임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있었다. 여러 가지 증거를 근거로 혐의자 A,B,C,D,E 중 한 명이 범인이고,그들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A:나는 훔치지 않았다. C도 훔치지 않았다. D가 훔쳤다.
B:나는 훔치지 않았다.D도 훔치지 않았다.E가 진짜 범인을 알고 있다.
C:나는 훔치지 않았다. E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D가 훔쳤다.
D:나는 훔치지 않았다.E가 훔쳤다.A가 내가 훔쳤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다.
E:나는 훔치지 않았다. B가 훔쳤다. C와 나는 오랜 친구이다.

각각의 혐의자들이 말한 세 가지 진술 중에 두 가지는 참이지만 한 가지는 거짓이라고 밝혀졌다. 지갑을 훔친 사람은 누구인가?

①A ②B ③C ④D ⑤E


논술 예시문제 (지문 생략)

존 롤스의 '정의론'과 마이클 왈저의 '정의의 영역들' 지문 중 일부를 제시한 뒤 각각의 관점에서 지역할당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거 및 이러한 논거의 적절성에 대해 구체적 사례를 들어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라.

(1300~15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