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회사들이 계절마다 유행하는 색채를 엄선해 만들어내는 게 매니큐어 아닙니까.

그러니 그 자체로도 작품일 뿐만 아니라 물감으로서도 뛰어나요.

특히 도자기같은 데 그림을 그리거나 반짝임을 표현할 때 아주 좋지요.

여성들이 손톱에 칠한 채 설겆이나 빨래,목욕을 해도 괜찮을 정도이니 보존성도 뛰어나고요."

스님의 매니큐어 예찬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사찰음식 전문점 '산촌(山村)'을 운영하고 있는 정산 스님(61)이 5년 전부터 여성 화장품인 매니큐어로 그려온 그림을 오는 19~25일 인사동 공화랑에서 첫 개인전 '관조+명상'전을 연다.

전시될 작품은 도자기 접시,타일,나무그릇,종이 등에 주로 꽃과 나무를 그린 54점.

"5년 전 아끼던 도자기가 깨져 금간 곳을 가리기 위해 매니큐어로 무늬를 그려보니 아주 좋더군요.

세련되고 정선된 그 색감에 매료돼 매니큐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정산 스님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서 화가를 꿈꾸곤 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15세에 부산 범어사로 출가한 뒤에도 수묵화,수채화,유화 등 손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매니큐어 그림도 혼자 좋아서 그려오다 미술평론가 김광명 교수(숭실대)의 눈에 띄어 전시회까지 갖게 됐다.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림 그리기도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붓을 잡으면 금세 한두 시간이 가버리니 무념을 체험하지요.

하지만 제 그림이 좋은 건지,또 전시회를 할 만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정산 스님이 물감으로 소비하는 매니큐어는 1주일에 100~200개.지금까지 쓴 것만 3만개를 넘는다.

스님이 매니큐어를 산다고 이상한 눈길도 많이 받았다.

매니큐어 값이 만만찮겠다는 말에 정산 스님은 "값보다는 색깔을 보고 산다"고 했다.

정산 스님은 40여년 전부터 사라져가는 사찰음식의 전통을 잇기 위해 전국 주요 사찰에서 음식 담당을 자청해 사찰음식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려온 것으로 유명하다.

1980년 첫 사찰음식 전문점 '산촌'을 열었고 '산채요리''한국사찰음식' 등의 책도 펴냈다.

현재 동산불교대학 사찰음식문화학과장을 맡고 있다.

정산 스님은 "사찰음식은 무욕(無慾)의 맛을 내는 것이며,그림 그리기도 부처님의 마음자리인 불성(佛性)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음식점 한쪽의 작업대 앞에 선 정산 스님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