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명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제1 부총리(42)가 내년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 푸틴이 총리를 맡아야 한다고 밝혀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푸틴은 '실세 총리'가 돼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는 관측이 하나씩 맞아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메드베데프 제1 부총리는 지난 11일 러시아 TV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내년 3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푸틴 현 대통령이 총리가 돼 줄 것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메드베데프,총리=푸틴'으로 권력을 분점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다.

3선 연임을 금지한 러시아 헌법에 따라 내년 3월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푸틴 대통령은 전날 여당의 대선 후보로 메드베데프 제1 부총리를 지명했다.

푸틴은 "17년간 메드베데프와 함께 일했기 때문에 그를 잘 안다"며 "메드베데프는 지난 8년간 많은 성과를 안겨준 나의 정책을 똑같이 이어나갈 것"이라며 지명 사실을 밝혔다.

친서방 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 경제정책이 시장친화적으로 바뀌고 경제 현대화에도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메드베데프는 특히 KGB 출신이 아닌 유연한 스타일의 경제통이어서 러시아에 관심을 둔 세계 각국 투자자들이 일제히 반겨맞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1일 메드베데프가 민간기업 유코스 해체와 같이 무리한 국유화는 시도하지 않을 친시장적인 인물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독일 베르무트 자산관리의 파트너인 요헨 베르무트는 "메드베데프는 러시아 경제정책을 잘 이끌어온 꿈의 후보"라고 극찬했다.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이날 "러시아 경제정책과 신뢰도에 청신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반영하듯,모스크바 증시는 10일 2%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메드베데프의 자유주의적 기질은 마흔 두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서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독일이 통일된 1989년 메드베데프는 레닌그라드대(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대생이었다며 옛 소련이 해체된 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메드베데프가 후계자로 낙점받은 것은 푸틴이 역점을 둔 보건 교육 주거 농업 등 4개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러시아 우랄시브 투자은행의 크리스 위퍼 수석 투자전략가는 "메드베데프 정권에서도 경제개발과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