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국내에서 진행된 대부분의 의약품 특허 소송에서 다국적 제약사가 연전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특허권 연장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려던 일명 '에버그린' 전략이 사실상 실패한 셈이다.

10일 한미약품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제6부는 최근 다국적 제약사인 한국MSD가 지난해 6월 한미약품 탈모치료제 '피나테드'가 자사의 '프로페시아'(성분명 피나스테리드)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제기한 특허침해금지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프로페시아의 주 성분인 '피나스테리드'가 탈모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논문을 통해 알려져 있어 특허로 보호받기 힘들다는 한미약품의 주장이 재판에서 받아들여졌다.

앞서 한국MSD는 중외제약과 벌인 전립선비대증치료제 '프로스카' 관련 소송(3심)에서도 패소한 바 있다.

올 들어 다국적 제약사가 특허소송에서 진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대 제약사인 화이자는 올해 진행된 거의 대부분의 소송에서 '쓴맛'을 봤다.

연간 7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는 동아제약 등 국내 제약사들이 제기한 특허무효심판(1심)에서 '특허무효'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1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린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의 경우 특허심판원(1심)에 이어 특허법원(2심)에서도 최근 '특허무효' 결정이 내려졌다.

최근 몇 년간 화이자의 성장을 견인했던 이들 두 품목의 특허 방어 전략이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화이자는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MSD와 화이자의 소송을 각각 대리한 국내 로펌은 모두 '김&장'이었다.

특히 화이자는 요실금 치료제 '디트로딘SR'의 특허를 놓고 한국유나이티드제약과 벌인 소송에서는 판결을 앞두고 소를 자진해서 취하하는 바람에 자존심을 구겼었다.

이 밖에 유럽계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아벤티스의 경우 보령제약과 항암제 '옥살리플라틴'을 놓고 특허분쟁을 벌였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이 같은 소송 패소에 대해 한 변리사는 "보통 다국적 제약사들은 승소 가능성이 높지 않아도 소송부터 내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일단 소송을 제기하면 국내 제약사들의 제네릭(일명 카피약) 출시가 늦어지거나,영업이 위축되기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 입장에서는 만약 소송에서 지더라도 이득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다국적 제약사들의 특허소송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한·미 FTA 협정문에는 다국적 제약사가 특허소송을 내면 제네릭 허가 절차가 자동으로 중단되는 조항이 들어 있다"며 "다국적 제약사의 특허 연장 전략의 위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