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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미술사의 산증인 김종하 화백 특별 초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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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어진 화가.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화가.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살아 온 화가. 우리 미술사의 산증인 <김종하 화백 특별 초대전>이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주)포털아트(www.porart.com)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1932년 15세의 나이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최연소 입선,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본 가와바다 미술학교 졸업(33년~36년), 동경제국미술대학 졸업(36년~39년), 1942년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프랑스 ACADEMI DE GRANDE CHAUMIERE 졸업(56년~59년), 198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루벤스훈장 수훈 (파리 앙데빵당전), 파리 보자르드전 금상 수상, 2002년 우리 정부로부터 역대 화가 중 최초로 생존 예술가에서 주는 문화훈장 수훈.

    김종하 화백의 경력이다. 하지만, 60대 이하 화가 중에서 김종하 화백을 아는 화가는 10%도 되지 않는다. 미술품 애호가도 대부분 모른다. 그는 잊어진 화가다.

    포털아트 김범훈 대표는 이번 특별초대전으로 김종하 화백을 모신 것에 대해 김종하 화백이 “한국현대미술사의 산증인이라는 점, 또 현재 생존 화가 중 작품의 예술적 수준이 국내 최고의 위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미술품 애호가나 미술전문가들로부터 잊혀져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 김 대표는 “김 화백의 예술인으로서의 자세나 치열한 성실성은 후배 미술인들뿐만 아니라 예술인 모두가 모범으로 삼아야할 일관된 예술가의 삶을 살아오신 분”이라면서 “이번 김화백의 초대전은 한국현대미술사의 새로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종하 화백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은 팔지 않았고 돈을 벌기 위해 예술행위를 하지 않는 구도자적 자세로 삶 전체를 일관해 왔다.

    그의 그림에는 신고전주의를 시작으로, 초현실주의와 독일식 표현주의 경향, 프랑스 인상사실주의 등이 작품 면면에 담겨 있다. 한마디로 근대 서구회화의 갖가지 양식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어느 순간 미술사적 사조를 들어 감상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질없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과연 현대 회화는 근대 회화가 일궈놓은 예술사적 업적으로부터 진보했는가.

    그러나 김종하 화백의 그림에 이르면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일말의 답을 얻을 수 있다. 더 이상 형식이나 마티에르, 오브제의 도입 등과 무관하게 그림이란 화가의 삶 그 자체와 정신에서 비롯되며 그 정신적 구현이 바로 예술의 진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김 화백의 그림에 이르러 그 무수한 미술사적 사조들이 무색해 지게 되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게 될 작품 중에는 김 화백이 19세 때 그린 ‘<다리아 꽃>15F ( 65 X 54 ) Oil on canvas 1937’을 비롯하여 1956년 프랑스 유학을 떠난 다음 해인 57년에 우리나라 화가로는 처음으로 PARIS LE SALON (GRAND PALAIS)에 출품한 ‘색장갑(50호)’도 선보인다.

    이번 전시작품은 유화 98점, 누드드로잉 72점, 스케치와 에스키스 475점이며, 김종하 화백의 프랑스 유학시절 작품에서부터 김종하 화백이 소장하고 홀로 감상하며 소장하여 온 50년대 작품, 1982년 프랑스 루벤스 훈장을 받을 때까지 수작들이 전부 전시 판매된다. 또한, 2002년 문화훈장을 수훈 받을 때까지 국내에서 창작한 전 작품이 모두 전시 판매된다.

    포털아트 김범훈 대표는 “김종하 화백의 삶은 범인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삶을 살아 온 분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가서 아르바이트로 가와바다 미술학교 졸업, 동경제국미술대학 졸업, 그리고 프랑스 ACADEMI DE GRANDE CHAUMIERE 졸업까지 12년 동안 미술을 정통을 익히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예술적 노력을 해왔으며 그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흡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국내 최초의 상설 화랑인 현 조선호텔 내의 반도화랑 개관전 ‘김종하, 박수근 2인전’으로 사실상 국내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모델 작업 때도 단 한 번도 기성복을 입혀 놓고 창작하지 않고 모델에게 손수 가봉한 옷을 입혀 놓고 그림을 그렸다.

    김종하 화백의 그림의 서사성은 현실적 공간과 이상향이 밀월을 하는 환상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육감적인 원형성과 원시적 질감, 탐미적 향수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실성과 초현실성을 넘어 그의 회화성이 내뿜는 독창성 때문에 환상적 리얼리즘 화가로 불린다.

    전시회 기간 중 구순의 원로화가 김종하 화백의 특강이 매주 일요일 이어진다.

    전시문의 02)567-1890 www.porart.com

    디지털뉴스팀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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