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상 순이익만도 3조원에 이르는 국민은행.명실상부한 한국의 리딩뱅크다.

그런 국민은행이 때아닌 자금난을 겪고 있다.

지난달 8일에는 지급준비금을 마감일까지 채우지 못해 한국은행이 8000억원의 긴급 자금을 지원했을 정도다.

자금이 증시로 빠져 나가 은행의 곳간에 구멍이 난 탓이다.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국민은행이 상환해야 하는 은행채 규모는 4조9394억원.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조원 이상 많다.

2일 증권예탁결제원과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은행권 전체가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상환하거나 차환 발행해야 하는 은행채는 24조7759억원 규모에 이른다.

자금 시장이 잘 돌아갈 때야 차환 발행에 문제가 없겠지만 변동성이 지금처럼 커진 상황에서는 최근 며칠간 빚어졌던 채권시장의 혼란보다 더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은행발(發) 금융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류승선 미래에셋 채권애널리스트는 "최근 채권시장 혼란은 은행채 만기가 몰려 있다는 소문과 함께 은행들이 발행을 서두르면서 촉발된 측면이 있다"며 "한은의 개입으로 다소 안정을 되찾았지만 내년 초까지는 은행채 수급 부담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환위기 이후 자산과 수익 측면에서 확연한 성과를 내온 은행들이 왜 금융(채권)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전락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과당 경쟁을 벌여 쏠림 현상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금융환경 변화의 핵심은 '머니 무브(자금의 대이동)'다.

고령화가 급진전되는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활성화하자 은행에 머무르던 자금이 투자자산 시장(펀드)으로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자금 유출에 따른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야 하는데도 은행들은 대출 경쟁에 몰두했다.

내년 2월까지 은행채 만기가 몰린 것도 2005년부터 은행들이 외형 경쟁을 벌이며 은행채 발행을 늘린 탓이다.

은행채 발행 잔액은 2005년 말 125조원에서 지금은 200조원 규모로 급증했다.

뒤늦게 돈줄이 말라가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은행들은 고객 유치를 위해 잇따라 예금 금리 인상에 나섰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21일부터 영업점장 전결 등의 방식으로 0.5%씩 금리를 얹어 최고 연 6.2%로 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기관을 대상으로는 6.5%까지 금리를 제시한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한 증권사 채권팀장은 "관리 비용까지 포함하면 수신 금리가 여신 금리를 웃도는 '역마진 현상'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조달 비용이 높은 시장 수신(CDㆍ은행채 발행)에만 의존해야 하는 은행들이 중소기업과 가계 대출을 조이고,자금난에 빠진 대출자들이 빚을 제대로 상환하지 않는 사태가 빚어지면 은행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일각에서 금융 시스템의 위기를 우려하는 이유다.

대전환기를 맞은 은행들이 갈수록 악화되는 경영 여건에서 수신 기반을 어떻게 확충하고,수익 기반을 어떻게 다변화해 나갈지 주목된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