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망을 갖지 않은 영화 배급사들이 잇달아 출현하고 있다. 기존의 제작.배급사가 배급업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영화사업을 하려면 '제작(투자)-배급-극장망'을 다 갖춰야 된다는 '수직 계열화'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1위 제작사인 싸이더스FNH는 다음 달 개봉되는 '용의주도 미스 신'의 배급을 멀티플렉스 체인에 맡기지 않고 직접 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라듸오 데이즈' '트럭' '킬미' '1724 기방난동사건' '타짜2' 등 앞으로 자체 제작하는 모든 영화를 직접 배급할 방침이다.

영화 '식객'에 45억원을 투자한 예당엔터테인먼트는 내년부터 자회사인 쇼이스트를 통해 배급업에 진출,뤽 베송 감독의 애니메니션 '아더와 미니모이'를 선보일 계획이다.

홈비디오 및 DVD 유통업체인 케이디미디어도 내달 6일 개봉되는 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를 시작으로 배급업에 뛰어든다. 이에 반해 국내 3대 영화제작사인 MK픽처스는 자체 제작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배급권까지 싸이더스FNH에 넘기면서 배급업을 중단키로 했다.

이 같은 배급업계의 지각변동은 배급사와 계열 극장 간의 '동맹'이 약화된 데다 자금력을 갖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이 신규 사업에 진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이에 따라 관객들의 영화 선택 폭도 넓어질 전망이다.

배급사의 능력은 제작.수입사로부터 좋은 영화를 받아 얼마나 많은 극장에 걸 수 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CJ엔터테인먼트.쇼박스㈜미디어플렉스.롯데시네마가 배급 업계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가 느슨해지고 있다. 예당의 정상훈 팀장은 "쇼박스가 배급했던 '디-워'는 당시 계열사였던 메가박스보다 CGV나 롯데시네마에서 더 많이 상영됐다"며 "요즘 극장들은 수익성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영화만 좋으면 얼마든지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이들 업체의 충분한 자금력도 배급업 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요소다. 싸이더스FNH의 최문희 팀장은 "KT가 대주주로 있기 때문에 제작비와 극장 확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