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ㆍ플랜트로 영토 넓혀 '제 2 도약'

지난 22일 오후 9시께 경기도 의왕시 현대로템 기술연구소.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연구시험동의 불빛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응용기술연구팀원들은 내년 터키 이스탄불에 납품 예정인 전동차의 하중 강도를 평가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동행한 김재학 연구개발기획팀 책임연구원은 "해외 전동차 수주가 급증하면서 연구원 한 사람이 최소 3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정도로 일손이 달린다"며 "휴일에도 나와서 일하는 연구원이 많다"고 귀띔했다.

현대로템이 철도차량 부문의 해외수주 물꼬가 터지면서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다.

이 회사는 철도차량의 본고장인 유럽을 비롯 세계 6대륙 32개 국가에 1만여량을 수출해 한국 철도차량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수주 잔고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채우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가장 수요가 많은 전동차 분야에서 프랑스 알스톰(27%),캐나다 봄바디어(20%)에 이어 세계 3위의 시장점유율(16%)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철도차량뿐 아니라 방위산업과 플랜트사업부문에서도 수주가 크게 늘어 지난해보다 11.8% 증가한 1조75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이 회사는 1999년 7월 대우중공업,현대모비스,한진중공업의 철도차량 부문이 통합돼 7대 빅딜 업종 중 1호로 출범했으며,2001년 10월 현대가 대우의 지분을 인수,현대차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최근 상호를 로템에서 현대로템으로 바꿔 달면서 명실상부한 현대가(家) 식구가 됐다.

현대로템은 전동차 외에 고속전철 및 자기부상열차 분야에서도 세계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관련 핵심기술을 자체 개발해 실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국책연구개발사업 중 하나인 한국형 고속전철 개발사업에 참여해 독일 일본 프랑스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350㎞/h급 고속전철을 개발했다.

현재 201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한국형 고속전철 KTX-II를 제작 중에 있다.

지난 7월부터는 400㎞/h급 차세대 고속전철 개발에 착수해 2015년 이후 국내외 고속전철 시장 수요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여성 현대로템 부회장은 "20량의 열차가 한꺼번에 움직여야 하는 기존 고속전철과는 달리 KTX-II는 10량씩 분리 운행이 가능해 효율적"이라며 "한국형 고속전철을 미국 터키 브라질에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로템은 자기부상열차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1988년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개발에 성공해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성공적으로 운행을 마쳤다.

올 1월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실용화 사업단이 발족되면서 110㎞/h급 무인운전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시스템 개발 및 운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2012년 상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현대로템이 철도차량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 떠오른 것은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에 따른 것이다.

3800여명의 현대로템 인력 가운데 현장직을 제외한 일반직원의 47%(약 740명)가 연구원이다.

10년 이상 경력자가 절반을 넘을 정도로 개발 및 설계 능력이 검증된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전 연구원이 연구개발 및 설계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규모 시험설비와 설계장비,이를 운영하는 선진 설계시스템도 보유하고 있다.

매년 매출액의 5∼6%를 연구개발비에 투자할 정도로 예산지원도 전폭적이다.

경영이 극도로 악화된 2003~2004년에도 매출액의 10% 내외를 연구개발비로 계속 투자함으로써 연구인력의 유출을 막고 기술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한동인 철차선행연구담당 이사는 "전동차 하나에만 12만종의 부품이 들어가고 무인운전.컴퓨터제어기술이 적용된다"며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를 신호제어한다는 점에서 항공기에 적용되는 것과 유사한 기술이 활용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내년 10월에 의왕부지에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최신식 연구시험동에 입주하게 돼 기술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세계 철도차량업계는 알스톰,봄바디어,지멘스 등 '빅3'가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현대로템, 일본 가와사키, 스페인 카프 등이 4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상황"이라며 "규모로는 빅3와 상대가 안 되기 때문에 기술력,품질,납기 준수에 승부를 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해외마케팅에 정통한 이 부회장과 엔지니어 출신인 이용훈 사장이 팀워크를 발휘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춰나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방위,플랜트 사업에서도 현대로템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차기전차(K2) 흑표를 국내 기술로 공동 개발,올해 미국 군사전문지 '디펜스 뉴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방위산업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포와 포탑 구동장치,유기압 현수장치 등 국내 첨단기술을 대거 채택한 K2는 디펜스아시아,서울에어쇼 등 방산산업 전시회에 출품돼 국내외에서 호평받았다.

로템은 차륜형 장갑차,견마로봇 등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품 다각화를 통해 방위산업의 해외시장을 더욱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등 자동차산업 투자가 활발한 시장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직접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또 미주 유럽 아시아 등에는 현지 법인과 딜러망을 구축해 해외 진출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플랜트 사업의 제철설비 부문은 세계 엔지니어링 업체와의 지속적인 기술교류를 통해 국내외 시장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환경설비는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공장 환경설비와 오염방지,폐기물 처리 등 사회간접자본 설비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송대섭 기자 ds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