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 시장의 대어로 꼽혀온 대한통운이 기존 주식의 150%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제3자에게 배정하는 매각 조건을 확정지었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한진,STX,CJ,농협 등 대한통운 인수를 노리는 기업들의 행보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대한통운은 기존 주식(1600만주)의 150%인 2400만주의 신주를 발행,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매각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에 따라 유상증자 후 대한통운의 총 주식 수는 4000만주가 되고 인수자는 60%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이날 서울지방법원 파산부는 대한통운과 매각 주관사인 메릴린치 컨소시엄이 제시한 '신주발행 유상증자'와 '공개경쟁 입찰'을 핵심으로 하는 매각안을 승인했다.


◆기존 주식의 150%를 신주로 발행

대한통운의 매각 조건이 확정됨에 따라 7년여를 끌어온 '주인 찾기'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이번 매각 조건의 핵심은 '기존 주식의 150%를 새로 발행해 높은 가격을 써낸 업체에 배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대한통운의 매각 방식은 '현재 발행 주식(1600만주)+1주'에 해당하는 물량을 증자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이에 따라 대한통운을 인수하려는 기업은 기존 총 주식 1600만주를 제외하고 추가로 발행되는 신주 2400만주를 인수해야만 새 주인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신주 발행가는 지난 23일 종가(9만7300원) 이상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여 매각 금액은 '2조3352억원(9만7300원X2400만주)+α'가 될 전망이다.

대한통운 주가를 10만원으로 본다면 액면가만 따져도 인수에 2조4000억원이 들며,경쟁이 과열될 경우 인수가격이 배 이상 폭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과 기업 가치를 감안할 때 매각 금액이 4조∼5조원에 이를 것이란 얘기도 나돌고 있다.

인수 후보업체의 처지에서는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 것이다.

대한통운은 다음 달 11일까지 인수에 관심이 있는 업체들로부터 인수의향서(LOI)를 받고 내년 1월11일 인수제안서(입찰서류)를 접수할 계획이다.

이후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고 최종 본계약은 2월 말께 체결할 예정이다.


◆인수 후보군 잰걸음

대한통운 인수 후보군으로는 금호아시아나,한진,STX,CJ,롯데,동원,동부,현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매출 1조1700억원을 기록한 대한통운을 인수하면 단번에 물류 선두업체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에 이들 업체는 오래 전부터 물밑 인수 작업을 진행해 왔다.

여기에 농협 국민연금 등이 인수전에 뛰어들기로 한 게 새로운 변수다.

줄잡아 10곳 안팎의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얘기다.

항공 라이벌인 금호아시아나와 한진그룹은 대한통운 인수를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두 업체 중 한 곳이 대한통운을 인수하면 해운.항공에 이어 육상물류까지 강화하게 된다.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을 앞세우고 재무적 투자자(FI)를 확보해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에 이어 기존 대한통운 2대 주주인 STX도 대한통운 인수로 해운물류 등 기존 사업과 시너지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인수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물류 부문을 4대 핵심성장 동력으로 정한 CJ는 대한통운 인수 후 물류 자회사인 CJ GLS와 합병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농업경제 활성화를 위해 투입할 6조원의 재원을 확보한 농협도 물류 부문을 장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핵심사업으로 선정,대한통운 인수전의 최대 복병으로 떠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공개 경쟁입찰 방식이어서 많이 써내는 기업이 유리하다"며 "인수 후보 간 든든한 자금력을 가진 재무적 투자자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달아오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인수 후보업체 "금액 너무 높다"

일각에서는 대한통운과 법원 측이 당초 예상과 달리 매각지분을 60%로 높임으로써 인수를 추진해 온 기업들에 지나치게 자금부담을 높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수 후보업체 관계자는 "채무가 3800억원인 회사의 인수 스타팅 금액이 2조3000억원을 웃도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다"며 "회사를 제대로 키울 업체를 찾는 게 아니라 업체 간 경쟁으로 몸값이 치솟는 머니게임을 부추기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지분율 50%에 1주만을 얹어 매각할 경우 인수 기업이 안정적인 경영권 행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한일합섬과 충남방적 등 최근 주인을 바꾼 기업들 처럼 인수업체가 지분을 60% 이상 확보해 경영권을 안정시킨 전례를 감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통운 관계자도 "매각 조건을 최종 확정짓기까지 법원 측과 며칠간 회의를 가진 끝에 새 주인이 잡음 없이 경영권을 넘겨받도록 하기 위한 합리적인 조건을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