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환위기 10년-1] 환란 10년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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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오늘,
우리는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습니다.
경제주권을 상실한 굴욕의 그 날을
이성경 기자가 뒤돌아 봤습니다.
1997년1월 한보철강의 부도는
국가 부도을 알리는 전주곡이었습니다.
이후 기아자동차와 진로, 해태 등
대기업이 잇따라 무너졌고
외국 투자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21일 우리는
국가 부도를 공식 선언합니다.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
"IMF에서는 한국이 겪고 있는 금융.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여러가지 정책조언과 자금지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IMF가 제공한 300억달러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환율은 달러당 800원대에서
단숨에 2,000원에 근접했고
살인적인 고금리는
서민들의 삶을 쥐어짰습니다.
30대 재벌그룹 가운데
16개가 사라지고 900여개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습니다.
근로자들은 평생 직장으로 생각했던
일터에서 내몰렸고 거리는
노숙자들로 넘쳐 났습니다.
이후 10년, 우리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경제 체질을 바꿔놓는데 성공했습니다.
기업들은 무리한 외형 성장을 멈추고
수익성 위주로
구조를 바꿨습니다.
400%를 웃돌았던 부채비율은
1/4 수준으로 뚝 떨어졌고 반대로
수익성은 4배 가까이 좋아졌습니다.
수출액은 3,000억 달러를 돌파했고
텅텅 비었던 나라 곳간은
이제 2,600억달러를 넘어
세계 5위의 외환보유고가 됐습니다.
이같은 빠른 변화는
IMF 조기졸업의 원동력이 됐지만
부작용의 골도 깊었습니다.
꺼져가는 경기의 불쏘시기였던
인위적 내수 부양은
400만 신용불량자를 양산했고
실업을 줄이기 위한 저금리 정책은
과잉 유동성을 잉태해
부동산 버블을 낳았습니다.
기업들이 위험을 회피하면서
투자가 침체에 빠졌고
투자 침체는 경제를
저성장 기조에 밀어넣으며
나라 전체를 무기력에 빠뜨렸습니다.
바닥까지 떨어진 후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르게 뛰어올랐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던진
의문과 숙제는 여전히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WOW-TV NEWS 이성경입니다.
이성경기자 sklee@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