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기초과학.공학 진흥기관인 미국국립과학재단(NFS).연간 5조원가량의 R&D 예산을 운용하는 이곳에서 예산 집행의 실권을 쥔 사람은 '프로젝트 매니저(PM)'로 불리는 400여명의 민간 전문가들이다.

모두 연구현장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과제 선정과 예산 배분,기술 개발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관리한다.

NFS뿐 아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선 모든 R&D 관련 기관에서 PM을 흔히 볼 수 있다.

외부 입김이나 간섭에서 벗어나 이들이 소신에 따라 R&D 예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통제할 때 투자 효율이 극대화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R&D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에도 이 같은 PM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한수 한국산업기술평가원 기반기술 본부장은 "전문가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고 그에 대해 냉정히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 R&D 예산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과학기술부와 산업자원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부 부처들은 PM 제도 도입을 외면하고 있다.

연구과제 선정과 예산 배분에서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전문위원'을 두고 있지만 PM제도와는 거리가 있다.

정보통신연구진흥원 한종석 기술기획팀장은 "PM제도와 달리 전문위원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이슈가 있을 때만 의견을 내는 자문그룹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들이 PM제도에 소극적인 이유는 뭘까.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무원들이 과제 선정 등 R&D 전 분야에 대해 권한을 놓기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정부 부처 중에선 정보통신부가 유일하게 PM 제도를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진대제 전 장관이 취임한 직후인 2003년 처음 도입했다.

경쟁이 치열한 IT(정보기술) 분야에서 모방 단계를 넘어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면 R&D 기획 관리 시스템부터 선진화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정통부는 지능형로봇 이동통신 차세대PC 정보보호 등 중.장기 과제에 대해 9명의 PM을 두고 있다.

대부분 삼성전자 LG전자 KAIST 등 대기업이나 대학에서 오랫동안 연구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이다.

정통부는 와이브로(휴대인터넷)가 국제표준으로 인정받는 등 PM 제도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정통부의 한 해 R&D 예산 규모가 8000억원가량(2008년 예산안 기준)인 점을 감안할 때 효율적 예산 집행을 위해서는 PM 숫자가 지금보다 늘어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보통 PM 1명이 연간 100억원 정도의 예산을 맡는 데 비해 정통부는 한 사람이 줄잡아 800억원을 담당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운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