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칩거,잠적이 유행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걸핏하면 종적을 감추거나 몇날 며칠 외부 출입을 삼가한 채 집에 꼭꼭 숨으면서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올해만 해도 고건 전 총리,손학규 전 경기지사에 이어 최근엔 이회창 후보가 그랬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며칠간 자택에서 나오지 않았다.

왜 정치인들은 '장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칩거,잠적을 자주 활용할까.

◆벼랑 끝 전술=칩거에는 반발성 성격의 '몽니' 스타일이 적지 않다.

정치적인 큰 결단을 앞두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다.

때문에 '중대 결심' 등의 긴박한 용어들이 단골로 따라 다닌다.

칩거는 그 목적이 무엇이든 정치인들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국민들의 시선을 확 끌기 위한 국면 전환용 카드로 종종 활용된다.

정치학자들은 자신의 정치적인 주장이나 뜻이 잘 통하지 않을 때 잠적을 통해 오히려 존재감을 극대화 함으로써 극적인 반전을 노리는 정치 기법이라고 정의한다.

대체적으로 정치적인 운명을 건 '벼랑 끝 전술' 성격이 짙어 '모' 아니면 '도'식의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다.

◆사례는='몽니성 칩거'의 대표적 사례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이 민자당 대표였던 1990년 10월 내각제 합의각서 공개 파동이 일어나자,당무를 거부하고 경남 마산으로 내려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을 압박한 것이다.

주류였던 민정계가 그해 5월 노 대통령,김종필 최고위원,YS가 만든 '내각제 개헌 합의 각서'를 공개한 것은 YS를 대표에서 끌어내리려는 의도라며 강력 반발한 것이다.

YS는 마산으로 가기 전 노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을 요구했으나 답변이 없자 칩거를 결행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여권의 분열을 우려,내각제 포기를 약속하며 YS의 손을 들어 줬다.

이인제 후보도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 칩거한 적이 있다.

그는 경선 초반만 해도 '대세론'에 힘입어 무난히 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3월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뒤 '청와대 개입설'을 제기하며 자택에 칩거했다.

그는 고심 끝에 선거전에 다시 뛰어들었지만 반전에 실패했다.

손 전 지사는 올해 들어 두 번이나 칩거카드를 꺼냈다.

지난 3월 경기도 강원도의 산과 절을 돌아다니며 5일간 잠행한 뒤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는 9월 대통합신당 경선 과정에서 정동영 후보와 김한길 의원 간 당권거래설까지 나도는 데 항의하며 '칩거파동'을 일으켰다.

고건 전 총리는 올해 초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 전 10일 이상 칩거하면서 '중병설'까지 나돌았다.

이회창 후보는 2001년 1월 안기부 자금의 총선 불법 지원과 관련한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정국이 얼어붙었을 때 10일가량 자택에 머물며 해법을 찾는 데 몰두,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끈 바 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