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며 '한국계 벤처기업의 대부'로 통하는 황승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벤처캐피털이 기업에 투자하면서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는 것은 야만적 행태"라며 "차라리 미국 등 해외 벤처캐피털을 수입하라"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7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개막된 '부품·소재 국제포럼 2007' 참석차 방한,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국 벤처업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벤처기업가가 무한책임을 지는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며 "벤처기업가가 실패할 때 전 재산을 날리게 된다면 벤처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또 실리콘밸리에서 최근 강조되는 분야로 바이오연료 풍력 등 환경기술과 구글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인터넷 기반의 신사업을 언급했다.

그는 "특히 구글이 추진하는 인터넷 사업은 이제 시작"이라며 "앞으로는 모든 검색이 맵(지도) 기반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벤처기업 창업→벤처캐피털 투자→기업공개(IPO)로 이어지는 실리콘밸리의 기본 생태계에 정통하다.

성공한 기업가들과의 인맥도 두터워 10여개 벤처기업의 사외이사 또는 고문직을 맡고 있다.

-한국은 정부의 육성책에도 불구하고 벤처가 활성화돼 있지 않다.

"한국에서는 벤처가 망하면 사업가는 집까지 담보로 잡히면서 벤처캐피털에 투자자금을 되돌려줘야 한다.

단기적으로 보면 벤처캐피털에 좋은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나쁜 결과를 낳는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벤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되기 때문에 벤처캐피털 존립 근거가 약해진다.

미국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바로 정산을 한다.

인간적인 보장까지 침해하지 않는다.

대신 벤처캐피털이 지분을 더 많이 갖는 방향으로 돈과 아이디어 사이의 지분을 조절한다.

한국은 법적으로라도 이 같은 벤처기업가의 무한책임을 막을 필요가 있다."

-관행이 쉽사리 고쳐지기 힘든데….

"벤처캐피털의 국제화가 필요하다.

한국 벤처는 국제화되지 않았다.

미국 등 해외에 진출해 자금을 조달하고 그 시장에서 사업하는 사례가 없으며 미국 벤처캐피털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예도 거의 없다."

-비현실적인 생각 아닌가.

"삼성 LG 포스코 등 글로벌 기업이 늘어나면서 한국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인도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인정받듯이 한국의 무선통신이나 소프트웨어 게임 등의 인력들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수도 있다.

무선통신 쪽은 한국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이 가장 앞서간다는 인식도 있다.

미국 벤처기업들도 새로운 기술을 한국에서 시험해 보겠다는 곳이 꽤 된다."

-어떻게 미국 벤처캐피털을 불러올 수 있나.

"판도라TV의 예를 들어보겠다.

미국 벤처캐피털인 돌(DOLL)캐피털이 판도라TV에 투자하고 싶었지만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돌캐피털에 내 제자가 한 명 있었는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토스벤처의 한 친구 소개를 받았다.

알토스 같은 곳이 도와준다면 한국에도 외국 벤처캐피털이 들어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아직 홍보가 안 돼 있고,알토스처럼 연결해 줄 수 있는 매개자가 없을 뿐이다.

한국은 진취적이고 공격적이어서 벤처에 적합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이 안 돼 있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