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자본주의식 국가 개조작업
리비아의 최고지도자인 무아마르 카다피는 최근 국민들에게 '이잘라(izala)'라는 화두를 던졌다.

'철저히 파괴하라'는 뜻의 이 단어는 곧바로 각종 포스터와 플래카드로 제작돼 리비아 곳곳을 뒤덮었다.

리비아 전역은 거대한 공사장으로 바뀌었다.

항구와 철도,고속도로 등을 정비하고 병원과 학교를 재단장하며 증권거래소를 새로 짓는 공사가 대대적으로 시작됐다.

대량살상무기(WMD)와 테러단체 지원을 포기한 뒤 서방 선진국들과 관계 정상화를 이뤄낸 리비아가 본격적인 '국가 개조작업'에 나서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7일 보도했다.

사회주의 색채가 짙었던 '인민의 국가'에서 경제에 중점을 두는 '자본주의 국가'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리비아는 그동안 세계 외교 무대에서 '왕따' 신세였다.

대량살상무기에 집착하는 카다피의 호전성과 알카에다 등 테러단체를 지원하는 국가라는 오명이 버무려져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강력한 제재 조치가 취해졌고 나라살림은 갈수록 피폐해졌다.

한계 상황에 몰린 카다피는 2003년부터 서서히 정책 노선을 바꿔 나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자극제가 됐다.

더 이상 뻗대다가는 정권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됐다.

2003년 12월 전격적으로 대량살상무기 개발 포기를 선언하고 서방과의 관계 복원에 주력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2004년 리비아를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서방 선진국들의 화해 제스처가 잇따랐다.

미국은 지난해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데 이어 최근엔 26년 만에 대사관 설치에 나섰다.

리비아는 자국 내 미국인 투자자산을 국유화하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리비아 경제의 발목을 잡던 제재 조치가 풀리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도 흘러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제대로 개발이 이뤄지지 못했던 유전지대가 투자의 초점이다.

리비아의 원유 매장량은 아프리카 국가 중 최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개발이 뒷받침될 경우 리비아가 세계 10대 산유국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립주의를 벗어던진 이후 경제도 살아났다.

2002년 1.4%에 불과했던 리비아의 경제성장률은 △2003년 5.9% △2004년 5.0% △2005년 6.3% △2006년 5.6%로 호전됐고 올해와 내년엔 각각 7.9%와 8.1%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1인당 국민소득도 2002년 3593달러에서 올해는 1만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카다피의 이런 국가 개조 움직임은 안팎의 반발도 야기하고 있다.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지난 3일 "카다피는 미국의 노예"라며 그를 상대로 성전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따른 국민들의 저항감도 적지 않다.

리비아 트리폴리의 한 남성은 "카다피 가족과 외국 투자자들은 점점 부자가 되고 있지만 우리는 바뀐 게 없다"고 푸념했다.

국가 개조작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엔 리비아 내 원자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적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