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그동안 시중유동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되던 광의유동성(L) 대신 통화량지표인 광의통화(M2)를 금융시장 동향의 바로미터로 내세워 통화정책을 통한 유동성 관리에 한계를 느끼고 있음을 스스로 시인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은은 6일 매달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광의유동성동향' 자료를 '통화 및 유동성지표 동향'으로 바꾸고, 발표 날짜도 최근월 광의통화 추정치가 포함된 '금융시장 동향'과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광의유동성 대신 광의통화 추이를 주목해 봐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이미 지난달부터 이 같은 방식을 도입했지만 당시엔 한 달 만 사정이 있어서 그러겠다고 했다가 최근에 말을 바꿨다.

이흥모 한은 금융시장국장의 설명은 이렇다.

발표 날짜를 변경한 것은 '광의유동성 동향'이 발표시점에서 두 달 전 통계이기 때문에 최근월(한달전) 자료인 '금융시장 동향'을 같이 발표해야 '균형잡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또 금융통화위원회를 며칠 앞두고 발표되는 광의유동성은 이미 두 달 전 통계이기 때문에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결정 결과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이 경우 통계의 신뢰성 내지 금통위 결정에 대한 시장의 신뢰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광의유동성은 월말잔액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월평균잔액을 기준으로 하는 광의통화보다 변동성이 크고 일회성 요인에 좌우될 수 있다는 '단점'도 언급했다.

그러나 한은이 지난해 주요 거시경제변수에 대한 설명력이 광의통화보다 우수하다고 '자랑'하며 도입했던 광의유동성에 대해 새삼 문제점을 지적하고 광의통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두 차례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광의유동성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7,8월 두 달 연속 콜금리 목표치를 올렸지만 시중 유동성 증가 추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7월 한 달 잠시 주춤했던 광의유동성은 8월 들어 다시 증가폭이 확대됐다.

국고채 잔액이 늘었기 때문이다.

반면 8월에 11.4% 증가했던 광의통화는 9월에 증가폭이 10% 후반으로 낮아진 것으로 추정됐다.

광의유동성에는 금융기관 유동성(Lf, 현금통화 및 금융회사들의 금융상품 포함)뿐 아니라 기업 및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까지 포함돼 있다.

한은이 금리를 올려 금융기관 대출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정부가 적자재정을 메우기 위해 또는 토지보상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발행을 늘리면 광의유동성은 늘 수밖에 없다.

실제 올 들어 정부 및 기업 등의 유동성은 전년동월 대비 20~24% 수준의 고공행진을 하며 시중유동성 증가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한은이 광의통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정책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