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에서 신상품 기획을 총괄하고 있는 서정호 상품전략그룹 부행장은 '빅팟통장'이라는 상품을 출시한 뒤 두 번 놀랐다.

먼저 은행 보통예금과 증권사 자산관리계좌(CMA)를 결합한 이 상품에 2개월 만에 15만명이 몰렸다.

또 가입자 대부분이 본인의 다른 은행 보통예금 계좌에서 일부분의 금액을 빼 빅팟통장에 예치한 것이다.

서 부행장은 "예전에는 월급통장 하나로 거래했다면 요즘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월급통장 외에 다른 은행의 통장이나 CMA를 함께 가지고 다니면서 여러 혜택을 누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금융환경의 변화에 따라 월급통장의 기능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급여이체뿐 아니라 카드대금 및 대출이자 납부,공과금 이체 등을 했다면 최근에는 여러 계좌를 이어주는 가교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적립식 펀드 불입금과 카드 대금을 결제하는 계좌 등으로 돈을 보내주는 '허브(Hub)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월급통장의 결제 기능이 약화된 가장 큰 요인으로 펀드 성장을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A은행에서 적립식 펀드를 가입하면 A은행의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매달 A은행의 계좌를 통해 펀드 불입금이 이체되도록 하거나 펀드 환매 시 펀드 가입금을 A은행의 계좌를 통해 받게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지주회사 산하의 증권사와 은행들은 계열 운용사에서 만든 펀드에 일정액 이상을 불입하면 CMA나 보통예금 통장의 인터넷 뱅킹이나 자동화기기(CD.ATM) 수수료를 면제해주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밑지는 게 없어 실물 통장을 추가로 만들게 된다.

실제 하나은행은 빅팟통장 가입자 중 하나대투증권에서 판매하는 적립식 펀드에 매달 20만원 이상 불입하는 고객에게 모든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있고 동양종금증권 등 여러 증권사들도 자신들이 판매하는 펀드에 매달 10만원 이상 넣은 CMA 가입자에게 인터넷 뱅킹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신용카드 또한 은행 통장을 여러개 갖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자행 통장을 카드 결제계좌로 사용하면 모든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있어 신한카드(옛 LG카드 포함)를 발급받는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신한은행 통장을 만들게 된다.

또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은행 차원에서 미는 주력 카드를 발급받는 고객에게 자행의 수수료를 전면 면제해주고 있어 카드와 통장을 함께 만드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 카드로도 각종 공과금이나 세금 등을 납부할 수 있게 되면서 카드가 월급통장의 결제 역할을 상당부분 빼앗아 왔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은행 직원들 사이에서는 "월급 통장이 있는 은행이 주거래 은행이 아니라 카드 결제 통장이 있는 은행이 진정한 주거래 은행"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급여 이체 외에도 관리비 자동이체나 카드 발급 등으로 수수료를 면제받을 수 있어 여러 개의 은행 보통예금과 CMA 계좌를 사용하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며 "하지만 월급통장을 중심으로 필요한 돈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월급통장의 명맥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