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ㆍ이재오 유신까지 거슬러간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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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당내 문제로 갈등의 정점에 서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 이재오 최고위원의 관계는 '불화'와 '친밀'로 점철돼 왔다.
두 사람의 악연은 유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최고위원은 유신시절 세 번 구속됐는데 그중 한 번은 박 전 대표와 관계가 있다.
이 최고위원은 1979년 경북 안동댐에 들렀을 때 당시 새마을봉사단 총재였던 박 전 대표의 방생기념탑을 보았다.
그는 방생비를 두고 "이것이 유신독재의 실체다"고 비판했다가 구속됐다.
두 사람이 정면으로 부딪친 것은 2004년 8월 전남 구례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 때다.
한나라당은 그해 4월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탄핵 후폭풍'을 뚫고 기사회생한 후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단합을 꾀하기 위해 연찬회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를 겨냥,"왜 친일이나 유신 문제만 나오면 쉬쉬 하느냐"며 '독재자의 딸'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왜 지난 선거(총선) 때 도와 달라고 했느냐.치사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3공ㆍ5공이 당의 뿌리인지 모르고 들어왔느냐.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대표를 흔들려면 아예 나가라"며 초강수를 빼들었다.
이에 이 최고위원은 움찔했고,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지난해 1월 이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 측 김무성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를 차지했다.
그는 당선 인사말에서 "크고 작은 일을 박 대표와 상의해 당을 안정시키고,강력한 대여 투쟁으로 당의 위기 타개에 한 몸을 바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표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이면서 두 사람 간 대립은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나 사학법 투쟁 문제를 놓고 잠복했던 두 사람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지난해 7월 당 대표 경선을 위한 전당대회를 계기로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 최고위원은 당시 '친박근혜'로 분류됐던 강재섭 대표와 맞붙어 패배했다.
이후 이 최고위원은 이명박 후보의 대선 경선 캠프의 좌장 역할을 맡아 박 전 대표를 꺾는 데 앞장 섰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
두 사람의 악연은 유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최고위원은 유신시절 세 번 구속됐는데 그중 한 번은 박 전 대표와 관계가 있다.
이 최고위원은 1979년 경북 안동댐에 들렀을 때 당시 새마을봉사단 총재였던 박 전 대표의 방생기념탑을 보았다.
그는 방생비를 두고 "이것이 유신독재의 실체다"고 비판했다가 구속됐다.
두 사람이 정면으로 부딪친 것은 2004년 8월 전남 구례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 때다.
한나라당은 그해 4월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탄핵 후폭풍'을 뚫고 기사회생한 후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단합을 꾀하기 위해 연찬회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를 겨냥,"왜 친일이나 유신 문제만 나오면 쉬쉬 하느냐"며 '독재자의 딸'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왜 지난 선거(총선) 때 도와 달라고 했느냐.치사하고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3공ㆍ5공이 당의 뿌리인지 모르고 들어왔느냐.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대표를 흔들려면 아예 나가라"며 초강수를 빼들었다.
이에 이 최고위원은 움찔했고,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지난해 1월 이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 측 김무성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를 차지했다.
그는 당선 인사말에서 "크고 작은 일을 박 대표와 상의해 당을 안정시키고,강력한 대여 투쟁으로 당의 위기 타개에 한 몸을 바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박 전 대표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이면서 두 사람 간 대립은 한동안 잠잠했다.
그러나 사학법 투쟁 문제를 놓고 잠복했던 두 사람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지난해 7월 당 대표 경선을 위한 전당대회를 계기로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 최고위원은 당시 '친박근혜'로 분류됐던 강재섭 대표와 맞붙어 패배했다.
이후 이 최고위원은 이명박 후보의 대선 경선 캠프의 좌장 역할을 맡아 박 전 대표를 꺾는 데 앞장 섰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