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의 범람 속에 웬만한 건강식품은 항암식품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온다.

건강서의 저자나 유명 언론매체도 '○○대 항암식품'을 선정했다며 식품별 항암 효과를 내세우지만 워낙 종류와 그에 대한 견해가 다양해 소비자들이 헷갈리는 것은 당연하다.

패스트푸드를 제외하면 죄다 항암식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항암식품의 허실을 알아본다.

항암식품은 대개 실험동물이나 배양한 세포를 대상으로 식품의 항암성을 측정한 결과를 담은 학술논문들을 통계적으로 처리해 선정한다.

다음으로 많이 쓰는 게 특정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인구집단에서 특정 암의 발병률이 낮다는 역학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항암식품임을 공인하는 방법이다.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찾아보기 힘들다.

선정 주체의 지역에 따라 주관이 많이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브로콜리는 '설포라판'이라는 황화합물 성분이 발암물질의 해독을 촉진하고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한다는 항암 효과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진에 의해 밝혀지면서 재배농가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이전에는 맛도 없고 하루 종일 얼음에 재워 보관해야 하고 팔리지 않으면 폐기해야 하는 결점 때문에 미국 내 소비자나 판매자나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식품이었다.

녹차는 주산지인 일본 시즈오카현의 주민에게서 폐암을 비롯한 암 발병률이 낮다는 연구 보고에 힘입어,올리브는 지중해 연안국에서 다량 생산되는 후광 덕택에 정상급 항암식품으로 등극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0대 건강식품을 선정하면서 귀리 대신 보리,연어 대신 고등어,블루베리 대신 가지로 대체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건강식품의 주산지에 따른 '신토불이'를 인정한 셈이다.

항암식품의 효과에 대한 상반된 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효과를 어느 정도 입증받은 게 마늘 가지 브로콜리 베리류 버섯류 등 몇 가지에 불과하다는 것도 한계다.

예컨대 토마토는 항산화제 성분인 라이코펜이 전립선암을 최고 35%까지 예방할 수 있다는 과거 연구와 달리 예방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연구가 지난해 미국에서 나왔다.

또 녹차가 위암 대장암 감소와 연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일본에서 발표된 바 있다.

콩이 유방암을 일으키느냐 예방하느냐 논쟁은 아직도 결론이 맺어지지 않는 상태다.

카레는 커큐민 같은 항산화 항암물질이 많이 들어 있지만 암을 억제하는 'p53유전자'의 기능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동물실험 연구 결과도 나왔다.

베타카로틴을 고농축 보충제로 복용하면 오히려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천연으로 먹으면 괜찮다는 논리도 입증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대표적 항암식품인 김치는 마늘,이소치오시안산,식이섬유,유산균 등이 풍부한 항암식품이지만 소금에 절인 발효식품인 데다 배추가 다량의 질소를 함유할 경우 아질산염 니트로소아민 등의 암 촉진 부산물을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냉장고가 보급돼 부패한 음식을 덜 먹는데도 한국의 위암 발병률이 세계적으로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삼도 인체를 대상으로 한 항암 효과 연구는 수편에 그쳐 국제적으로 인정받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먹는 방법도 고려해볼 문제다.

포도 껍질 부분에 다량 함유된 레스베라트롤이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고 자살을 유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껍질까지 먹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다고 적색 포도주를 암 예방식품으로 권장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된장은 짠 음식이니 만큼 암 고혈압 당뇨병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기존 항암식품의 효능을 인정하더라도 항암식품으로 선정한 방법적 한계를 감안,약으로 간주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약이라고 생각해 특정 음식을 편식한다면 예컨대 항암제의 효능이 감퇴하는 등 손해가 따른다.

그래서 유행을 좇아 어떤 항암식품에 올인하기보다는 성인병 예방 등 건강관리도 겸해 골고루 먹는 게 바람직하다.

몸에 좋은 것을 찾기보다 몸에 해로운 발암식품을 피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

도움말=서영준 서울대 약대 교수,조정훈 경희대 한의대 교수


■ 항암식품의 3대 작용원리

1. 담배 대기오염물질 등 발암물질의 공격을 받아 DNA가 손상되면 돌연변이를 초래하는 '개시 단계'를 차단하는 식품

-발암 전 단계 물질이 최종 발암물질로 전환됨을 차단:비타민C(딸기 레몬 파슬리 귤),식이섬유,이소치오시안산(배추 양배추 케일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청경채 등 십자화과 채소)

-최종 발암물질이 DNA발암물질 복합체를 생성함을 차단:아릴설파이드(마늘),카테킨(녹차),엘라직산(호두 잣 땅콩 등 견과류,딸기 블루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등 베리류)


2. 돌연변이가 누적돼 변형 세포 덩어리를 이루는 '촉진 단계'나 양성 종양이 악성 또는 전이성으로 바뀌는 '진행 단계'를 억제하는 식품

-황 화합물(마늘 양파 무 양배추), 베타카로틴(당근 시금치 부추 호박),비타민C,비타민E(참기름 들기름 아몬드 올리브 현미),폴리페놀(적포도주 참깨 녹차 생강),라이코펜(토마토)


3. 암세포가 자멸(apoptosis)하도록 유도하는 식품

-제니스테인(콩 청국장 된장 등),레스베라트롤(포도),베타시토스테롤(배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