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처가 불투명한 '묻지마 예산'이 내년 예산에 3조6000억원이 넘게 잡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내년도 전체 예산의 1.5%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다.

이 같은 예산이 지난 5년간 줄지않고 되레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일 잘하는 큰 정부'를 외친 참여정부가 공무원 사회의 비대화와 함께 불투명한 예산집행을 더 조장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뒷걸음치는 투명회계

속칭 '묻지마 예산'으로 불리는 예산항목은 과거 1998년까지 '판공비'로 통칭되던 것으로,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직무수행경비에다 사후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지자체 특별교부금'이 포함된다.

내년 예산엔 △특수활동비 8509억원 △업무추진비 2112억원 △직무수행경비 1조6337억원 △특별교부세 9456억원 등 총 3조6414억원이 배정돼 있다.

이 예산들은 대부분 법상 용도를 밝히지 않아도 되거나,밝힌다 하더라도 관행상 용도를 조작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지속적으로 줄여야 나가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참여정부도 공무원사회 개혁을 외치며 이 같은 예산을 줄이겠다고 나섰으나 방향은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관련 예산은 참여정부 첫해인 2003년 3조4941억원에서 2005년 잠깐 줄었다 내년엔 3조6414억원으로 오히려 5년 전보다 4.2%(1473억원)가 늘려 배정돼 있다.

◆업무추진비 줄인다더니

이 가운데 접대성 자금으로 꼽히는 업무추진비는 정부가 총액의 20%를 줄이겠다고 호언한 뒤 잠깐 줄어드는 듯 했으나 내년에 2112억원으로 결국 11.5%가 증액된 것으로 집계됐다.

부처별로 지급되는 업무추진비와 달리 공무원 개인에게 지급되는 직무수행경비는 2006년 고위직 공무원들의 월정 직책금을 50%나 올리면서 급상승세를 타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 특수활동비다.

특수활동비는 국가재정법에 의거해 대통령비서실과 경호실,국가정보원등 14개 부처에서 범죄수사나 정보수집용으로 사용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감사원이 2005년1월부터 2006년10월까지 국정홍보처 등 4개 부처의 특수활동비 집행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이 돈은 누구에게 어떤 명목으로 쓰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국정홍보처의 경우 국정홍보처장과 차장 두 명이 1년10개월 동안 3억6400만원을 썼다고 했는데 어디다 썼는지 증명하는 집행내용확인서는 하나도 제출되지 않았다.

특히 김창호 처장의 경우는 특수활동비를 매달 수차례에 걸쳐 현금으로 지급받았고 공휴일에도 집근처에 사용해 주머니돈으로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특별교부세=공무원 쌈짓돈?

국정홍보처 관계자는 "접촉 대상이나 일시ㆍ장소에 대한 기록을 남길 경우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부득이하게 현금으로 특수활동비를 집행하고 있다"며 "특수활동비 사용 지침에도 경비집행의 목적 달성이 어려울 경우엔 집행 관련 증빙서류를 생략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해명했다.

특별교부세 역시 공무원 사회에서 '쌈짓돈'으로 여겨지는 항목이다.

재해대책과 지역현안사업 추진을 위해 각 지자체의 신청을 받아 행정자치부가 지자체장에게 곧바로 지급하는 이 돈은,재원배분 기준이 모호하고 집행 뒤 성과평가나 정산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신정아씨를 도와주기 위해 특별교부세 지원 대상이 안 되는 흥덕사 등에 12억원을 지원토록 한 사실이 드러나 공무원들의 '쌈짓돈'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이 항목은 지방교부세 총액의 4%를 배정하고 있어 해마다 규모가 늘고 있으며 내년의 경우 9456억원이 배정돼 있다.

1조원에 가까운 돈이 집행되는데도 사후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자금이 제대로 쓰였는지 매년 전수조사를 벌였지만 한 번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