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는 지난 2일 밤 경기도 장흥유원지 내 송암스타스밸리에선 이색적인 생일파티가 열렸다.
서울 시내에서 한시간가량 떨어진 계명산 정상에 위치한 천문대에 어둠이 깔리면서 외국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날 화제의 주인공은 제인 쿰스 주한뉴질랜드 대사(44)였다.
외교가에서 보기드문 여성 대사로 유명세를 타고있는 쿰스 대사는 재즈 보컬리스트인 남편 팀 스트롱(54)과 함께 파티장에 나타났다.
이어 쿰스 대사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외국인과 한국인 친구들 30여명이 줄줄이 입장했다.
참가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앨렌 카슬 DHL코리아 사장,비온 엘든 삼성에릭슨 대표,디디에르 벨투아즈 인터컨티넨탈호텔 총지배인,장 마리 후티거 르노삼성자동차 사장 등 다국적 기업 대표들도 눈에 띄었다.
민은자 드림아이에듀 대표,나은경 나스기획 대표,김귀연 아태국제회의 연구소 소장 등 한국인 참석자도 많았다.
파티장 곳곳에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이 뒤섞여 나와 국제회의장 같은 분위기였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멀리까지 와준 친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 평생 가장 멋진 생일 파티가 된 것 같아요."
친구들의 박수 속에 헤드테이블로 나와 케이크를 자른 쿰스 대사는 한국을 보여주고 싶어 고국에서 부모님도 초청했다면서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 내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을 가져 이름이 알려진 남편 팀 스트롱이 구성진 목소리로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부인의 생일을 축하합니다"라고 한국말로 노래를 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파티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최현옥 송암천문대 기획실장의 안내로 케이블 카를 타고 산정상에 있는 천문대로 올라갔다.
이날 모임은 생일 파티와 함께 가을 하늘과 별자리를 보자는 취지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9시가 넘어 계명산 정상에 오른 회원들로부터 탄성이 터져나왔다.
날씨가 흐려 기대만큼 많은 별자리를 관찰할 순 없었지만 북극성 등 밝은 별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정상 천문대에서 바라본 야경도 밤하늘과 어울려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제인 쿰스 대사는 "한국에 온지 1년 반이 지났지만 밤늦은 시각에 산 꼭대기에서 서울 주변의 밤 풍경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한국의 가을 밤하늘은 너무 아름답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쿰스 대사 부부와 자주 어울린다는 톰 헥트 박사(GS칼텍스 근무) 부부도 "대도시인 서울에서 한시간 남짓한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도쿄에서도 살아봤지만 자연 풍경은 서울이 한 수위"라고 거들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내·외국인은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이 운영하는 '코리아CQ' 과정으로 맺어진 사람들이다.
지난해 초 한국대사로 부임한 직후 가입했던 쿰스 대사는 당시 회원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 지금도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쿰스 대사와 동료들은 한국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만나 다양한 체험을 하고 있다.
제주도 설악산 등 전국 유명 관광지는 물론 해인사 불국사 등을 찾아 '한국의 멋'을 찾고 있다.
이번 천문대 관측 행사도 한국을 보다 깊이 알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다.
지난 7월 문을 연 송암스타밸리에는 천문대와 스페이스센터,숙박시설 등이 갖춰져 가족단위 고객들로부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첨단 천체 망원경으로 천문 관측이 가능하며,입체 시설의 디지털 플라네타리움에서 우주 경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다방면에서 '한국 사랑'이 깊어가면서 쿰스 대사 부부는 양국 간 문화 교류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녀는 대사로 부임한 이후 뉴질랜드로 유학했던 한국 학생들을 정기적으로 대사관에 초청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를 새로 만들었다.
또 양국 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해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는 등 경제 교류 확대에도 적극적이다.
재즈 보컬리스트인 남편도 국내 이벤트에 부인과 함께 참석해 목소리로 한 몫 거들고 있다.
그는 대사 주관으로 열리는 뉴질랜드 와인 홍보나 소고기 판매 행사에도 나타나 음악으로 민간 외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스트롱씨는 지난달 개봉된 영화 '상사부일체'(감독 심승보,제작 두손시네마)에 마피아 보스로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북한대사도 겸직하고 있는 제인 쿰스 대사는 남북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생일 파티가 열린 지난 2일은 마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 날이어서 대사가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어봤다.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한국인들은 정말 우수합니다.일도 열심히 하고요."
1년반의 짧은 한국생활을 통해 '한국'의 저력을 실감했다는 쿰스 대사는 "한국인들이 능력을 발휘해 남북 관계도 좋은 방향으로 진전될 것으로 믿으며,외국 대사로서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