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빗 뱅커(PB)로서 거부(巨富)에 속하는 강남 부인들을 상대하다 보면,'부자가 참 많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실제 지난해 기준으로 금융소득만 한달에 1000만원 이상 올리는 사람이 7700여명,연간 4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사람이 2만4000여명에 달한다고 하니,필자의 생각이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닌 듯 싶다.

그렇다면 재테크를 할 때 이렇게 많은 부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절세'다.

한국 부자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관리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하면 세금을 줄일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라는 데 일선 PB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의 부담이 만만치 않게 늘어난 요즘에는 부자들이 절세에 신경쓰는 정도가 한층 더 심해진 느낌이다.

세무교육 세미나를 찾는 강남 아줌마들의 발길이 부쩍 늘어난 게 이를 말해준다.

그런데 세금을 아끼는데 있어 진짜 부자와 어설픈(?) 부자 사이에는 한 가지 큰 차이점이 있다.

진짜 부자들은 세무사 고용비용 등 절세에 들어가는 비용을 결코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어설픈 부자들은 '세무사 고용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굳이 세무사를 써야하나'라는 생각에 세금 아끼는데 인색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진짜 부자와 어설픈 부자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행동방식의 차이는 세무 조사를 당해본 경험이 있는지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면 된다.

강남에서 성형외과 병원을 운영 중인 의사 A씨의 사례는 부자세계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특징을 잘 보여준다.

평소 세금내는데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던 A씨는 국세청의 무작위 세무조사에 걸려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한 뒤부터 세금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

특히 강남 아줌마의 전형인 A씨 부인의 경우 지금 보유하고 있는 주택을 매도할 때를 대비해 인테리어 공사에 따른 수리비 영수증이라든가,부동산 중개업소에 지급한 복비 영수증 등을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

양도소득세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또 비교적 큰 금액의 자산을 취득하거나 명의를 이전할 때에는 예금통장은 기본이고,자산매각 관련 계약서 및 대금입금 내역 등을 세밀하게 분류해 정리하는 것도 A씨 부인의 몫이다.

세무사를 쓰는 비용도 아끼지 않게 됐다.

"'푼돈 몇푼 아끼려다 거액을 물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절실하게 깨닫게 됐다"는 게 그의 얘기다.

물론 반드시 내야할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절세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해 비용을 들여서라도 세무사를 찾는 것일 뿐이다.

절세에 대한 부자들의 욕구가 이처럼 매우 크고 또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속이나 증여하는 과정에서 가족들끼리,또는 상속·증여 대상자와 과세당국 간에 다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현실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의 경우 피상속인의 상속(사망)이 개시되기 전에 상속을 논하는 게 불효란 인식이 사회 전반에 강하게 깔려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부모가 사망하기도 전에 상속대책을 수립하는데 익숙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준비된 절차에 따라 상속이나 증여를 실행 하는 것과 아무런 대책 없이 부모가 사망한 이후 갑작스럽게 세금을 징수받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상속이 개시된 이후에 그제서야 대책 마련에 급급하다 보면 상속 대상자 간에 분쟁이 생기게 되고 종종 무리한 절세방법이 동원돼 과세당국과 적지 않은 마찰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대기업 간부로 있으면서 억대의 연봉을 벌고 있는 50대 B씨의 사례는 한국의 부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B씨의 경우 자녀들 역시 각각 23살과 21살로 어린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시중은행 PB센터의 도움을 받아 작년에 자녀들에게 각각 현금 1억원씩을 증여했다.

증여세로는 약 700만원을 납부했고 해당 금액은 곧바로 간접투자 상품에 투자해 본인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현금을 증여했기 때문에 증여절차도 매우 간단했다.

직계비손의 경우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 △자녀들의 통장사본 △증여신고서 등만 준비하면,세무서에 본인이 직접 손쉽게 신고할 수 있을 정도로 절차가 간단하다.

그는 이 증여자금은 자녀들 결혼 때 부동산 구입이나 결혼비용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상속 할 때 자식들이 과도하게 상속세 부담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앞으로 10년에 한번씩 재산에서 일정액을 떼어내 증여를 할 생각이다.

B씨처럼 요즘에는 PB고객들이 과거에 비해 상속이나 증여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상속인의 상속 재산을 상속인들에게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이전시킬 수 있도록 사전에 세무사를 통해 철저하게 준비한다.

이 같은 방식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일반화된 현상인데,조만간 한국에서도 이 같은 추세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김재한 국민은행 골드&와이즈 방배지점 PB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