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채무자 대리인제도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채권추심 행위를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신용정보회사의 채권 추심이 어려워져 은행과 카드사의 부실채권 회수가 위축되는 등 연쇄 파급효과가 예상되고 있다.

채권추심 업무를 맡아온 신용정보업계는 존폐 위기로 내몰릴 수 있고,채무자의 모럴해저드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 대한 대출 기피 등 각종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다.

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 등이 8월 말 발의한 '채권추심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공정채권추심법)'은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됐다.

이 법안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선공약인 '신용회복 4대 특별대책'의 일부분일 뿐만 아니라 여권에서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올해 정기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채무자도 대리인 선임 가능

공정채권추심법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 대리인제도' 도입이다.

채권자 측 대리인인 채권추심업체에 맞서 채무자도 소비자대리인(변호사 법무사 신용정보상담사)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법안의 골자다.

채무자가 대리인을 선임할 경우 채권추심업체는 대리인을 통해서만 추심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채무자는 채권추심업체로부터 직접 추심을 당하는 고통에서 해방된다.

불법 추심행위를 당할 경우 5000만원 이하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김기진 신용정보협회 회장(나라신용정보 사장)은 "소비자 대리인제도가 도입되면 채무자에 대한 직접적인 추심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추심을 주업으로 하는 신용정보사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용정보업계는 부실채권 규모가 감소함에 따라 업계 매출액이 2005년 9000억원에서 지난해 7000억원,올해 6000억원으로 줄어드는 등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

◆모럴해저드 등 부작용 우려

이판암 신한신용정보 사장은 "법이 통과되면 은행 카드사 등 각 금융회사들은 대리인(신용정보사)이 아닌 직접 추심원을 고용해 추심해야 한다"며 "금융산업이 발전하려면 금융회사들은 핵심업무만 하고 주변업무는 아웃소싱해 효율을 높일 수 있는데 이를 막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부실채권이 생기면 매각하거나 유동화(자산유동화증권 ABS 발행 등)시켜 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이런 업무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부실여신 회수 가능성이 현재보다 낮아지는 만큼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금융권이 대출을 기피하는 부작용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금융권,입법 반대에 나서기로

은행연합회와 여신금융협회,상호저축은행중앙회,생명보험협회,신용정보협회 등 금융관련 6개 협회는 지난달 28일 연석회의를 열어 이 법안에 반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대해 박 의원 측 이종헌 보좌관은 "채권자의 대리인에 맞서 채무자도 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불과하다"며 "시행 초기엔 채무자들의 모럴해저드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리인을 통해 채무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만큼 전체적으로는 효율성이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회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정순영)의 검토보고서에서도 이 법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법이 △채무자의 이익만 우선시할 수 있고 △민사거래의 기본법인 민법의 취지에 어긋날 수 있으며 △소비자신용상담사 등이 적정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고 △통신거부권 등이 지나치게 추심행위를 제한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법안 검토를 위해 8일 자체적으로 의원 공청회를 열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