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스윙할 때 클럽이 바닥에 안 닿았어요." "티를 조금 높게 꽂아주세요." "오른쪽으로 더 돌아서세요."

국내 첫 시각장애인 골프대회가 1일 경기 포천 베어크리크GC에서 열렸다.

간간이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자원봉사 코치들의 손을 잡고 코스에 나선 시각장애인 골퍼들은 몹시 상기된 표정이었다.

총 13명(번외경기로 나선 일본인 3명 제외)이 출전한 이번 대회에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1급 장애인이 6명,약시인 2급이 7명 나왔다.

라운드 시에는 코치가 한 명씩 따라붙었다.

티를 꽂아주고 방향을 잡아줘야만 샷이 가능하기 때문.물론 플레이 방식도 일반 골퍼와 좀 다르다.

티샷 OB가 자주 나고 페어웨이에서 토핑도 많이 하는 까닭에 홀마다 기준 타수의 2배까지 플레이를 하고 그때까지 그린에 볼을 올리지 못하면 그 홀을 마친 것으로 간주한다.

스코어는 '더블파'에서 2타를 더한 것까지만 적는다.

예컨대 파4홀에서 8타 이내에 '온그린'을 못 하면 볼을 집고 스코어는 '10'으로 기록하는 것.워터해저드나 벙커에서도 클럽을 지면에 대고 칠 수 있다.

이날 날이 어두워져 전 참가자들이 마지막 두 홀을 돌지 못했다.

그래서 17,18번째홀은 모두 '보기'로 적었다.

13명 전체에서 '파'는 모두 3개나 나왔다.

1위를 차지한 골퍼는 2급 장애인인 하연근씨로 121타(58·63)를 쳤다.

그는 16번홀(파4)에서 티샷이 OB가 나 다시 티샷을 한 뒤 홀까지 27m를 남기고 친 다섯번째 샷이 곧바로 홀 속으로 들어가는 행운도 안았다.

이른바 'OB 버디'.참가자들의 평균 타수는 70오버파 142타에 달했다.

골프를 한 지 2년 됐다는 송문호씨(27)에게 경기 전 '베스트 스코어'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18홀 라운드를 오늘 처음 해본다"고 답했다.

그는 이날 151타를 쳤다.

캐디로 나선 문호씨의 아버지 송재천씨(66)는 "시각장애인들이 운동을 못해 배가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골프를 시작했지요.

전담 캐디 한 명만 배치하면 일반인과도 라운드가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8년 전 실명했다는 황인숙씨(43·여)는 "지난 1월 발족한 협회에 가입하면서 골프를 시작했다"면서 "드라이버샷의 경쾌한 소리가 정말 좋다"고 했다.

한국시각장애인골프협회를 창설하고 이번 행사를 기획한 골프칼럼니스트 김덕상씨는 "30명 정도의 회원들과 10명의 자원봉사자로 협회를 구성했다"면서 "앞으로 세계시각장애인골프협회와 관계를 구축하고 세계 대회에도 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각장애인인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은 즉석에서 레슨을 받은 뒤 시타를 했다.

정 의원은 "골프가 시각장애인들의 재활이나 장애 극복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 "앞으로 골프협회와 접촉해 보급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대신증권이 주최한 이 대회는 명문 퍼블릭골프장으로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베어크리크GC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베어크리크 측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동안 9홀 무료 라운드 기회를 줬고 이번 대회에도 그린피를 50% 할인해주고 우승자에게는 10회 무료 라운드를 보장해주기로 했다.

이 골프장 홍유경 사장은 "처음에 시각장애인들이 골프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라운드할 골프장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여러 사람이 즐겨찾는 퍼블릭골프장인 우리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블라인드 골프'는 1925년부터 시작됐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1000명이 넘는 시각장애인들이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8월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사는 시각장애인 실라 드러먼드(53·여)가 홀인원을 하기도 했다.

세계시각장애인골프협회는 1998년 발족돼 12개국이 가입돼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일한 회원국이다.

1946년부터는 미국에서 '블라인드 골프 챔피언십'이 열렸고 미국의 팻 브라우니가 23회 우승했다.

그의 공식 최소타 기록은 74타다.

베어크리크GC(포천)=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