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의 문턱에 선 내 나이만큼 삶에 대한 음미를 정직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문단의 원로인 김남조 시인(80·사진)이 16번째 작품집인 '귀중한 오늘'(시학)을 펴냈다.

시집 '영혼과 가슴'을 내놓은 지 3년 만이다.

70편가량의 작품이 실린 이번 시집으로 시인은 올해 '만해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삶을 여유있게 음미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누군가 만경창파에/ 튼실한 배를 띄우고/ 햇무리 어른어른/ 뱃전에 그림자 지우는 거기에/ 나를 얇게 실어준다면/ 엄마 등에 업힌/ 아이처럼/ 황홀히 안전하련만// 아니야/ 그쯤엔 미달이라 해도/ 정든 이 세상과/ 오늘도 두 손 마주 잡고/ 이미 나는/ 잘 놀고 있다네.'('저문 세월에' 중)

이에 대해 시인은 "30대에는 청신함,40대에는 내연성이라는 덕목이 있었지만 자주 상처받고 불면에 시달렸다"며 "70대를 지날 때에는 그 연배만이 갖는 편안한 감성과 서정의 두께라는 선물이 놓여있더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 느끼는 감성과 함께 남은 세월이 많지 않다는 생각도 시에 담았다.

'친구여/ 우리의 고통/ 이해되지 못하고/ 남은 세월 땡볕 아래 얼음과자라 해도/ 괜찮다 괜찮다/ 고맙게 이미 오래 살았다.'('삶의 진맥' 중)

그는 "참으로 살아볼 만한 70대였고,80대의 문턱에 선 지금도 앞으로의 삶이 그럴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다만 삶이 무한히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다.

등단한 지 60년 가깝지만 시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치열하다.

'어느날 시가 쓰여진다/ 혈액처럼 고여오는/ 아니 혈액 자체인 그것을/ 원고지 위에 공손히 옮긴다/ 한데 야릇한 의문이 섞여 치받는다/ 더 오래/ 절망해야 옳지 않았을까// 여러 세대에 걸치는/ 소수의 진정한 독자들/ 그들의 가슴을 관통하기엔/ 화살이 허약한 게 아닌지/ 시적 진실성의 함량미달로/ 친구인 시인들에게/ 환멸을 끼칠 일은 아닌지.'('시에게 잘못함' 중)

시인은 "시에 대한 반성은 항상 있는 것이고,삶은 늘 과오라는 계단을 딛고 가는 것"이라며 "나이가 든다고 인격적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기도 외에 사회적인 문제 의식도 엿보인다.

'독도를 위하여'에서는 '우리 국토/ 동쪽 끝 사람의 곧은 척추를 탐하여/ 문설주 저리 흔드는 소리…/ 낭패로다'고 말하기도 하며,'평화'에서는 '필연 그가 오리라'며 노래 부른다.

2일부터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말을 보탰다.

시인은 "백성이 배고파서야 무슨 일이든 되겠느냐"며 "어떤 길을 가든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결과라도 온다면 참 고맙고 다행스러울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