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삼성의 한 임원은 최근 그룹의 물밑 분위기를 '폭풍전야'라고 표현했다.

이 임원은 그룹 내부에 감도는 위기감의 정도가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고 전했다.

연초부터 계속된 전자 계열사들의 잇단 실적부진과 삼성전자 기흥공장 정전사고 등 유난히 어수선했던 일련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연말께 대대적인 쇄신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때마침 삼성은 4분기에 그룹 차원의 '굵직한' 행사를 잇달아 맞는다.

11월19일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20주기와 12월1일 이건희 회장의 취임 20주년 행사가 이어진다.

특히 이건희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아 지난 20년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해왔던 삼성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깃발을 내걸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실제 삼성은 올해 CEO(최고경영자) 및 임원 인사 시기를 이 회장 취임 20주년에 맞춰 12월 중에 단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는 예년에 비해 '대폭'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재계는 △고 이병철 회장 20주기 △이건희 회장 취임 20주년 △연내 조기 인사 등 3대 모멘텀을 통해 드러날 삼성의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 창업정신으로 재무장 ]

4분기 3대 모멘텀 중 첫 번째는 고 이병철 회장 20주기 행사다.

매년 이건희 회장과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명희 신세계 회장,이재현 CJ그룹 회장 등 범(汎) 삼성가는 이병철 회장 기일에 모여 조촐한 합동 참배식을 가졌었다.

하지만 올해 삼성은 이병철 회장 20주기를 그룹의 새로운 전기(轉機)를 다지는 기회로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그룹 관계자는 "삼성이 글로벌 기업의 반석에 오르는 토대를 닦았던 선대 회장의 업적을 재평가하자는 의미에서 몇 가지 의미있는 추모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고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인 '호암자전' 개정판을 20주기를 전후해 펴낼 계획이다.

'호암자전'은 고 이병철 회장이 타계 1년 전인 1986년 친필로 쓴 것으로 첫 출간 이후 지금까지 절판돼왔다.

삼성은 개정판을 통해 창업주의 창업이념과 삼성의 성장역사 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덧붙일 예정이다.

삼성은 또 창업주의 경영철학과 업적을 '소책자' 형태로 제작,해외 유명인사들과 기업인들에게 보내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고 이병철 회장의 경남 의령 생가(生家)도 전면 개방한다.

11월19일에 열리는 개방 기념행사에는 이건희 회장과 이인희 고문,이명희 회장,이재현 회장,이재용 전무 등 범 삼성가는 물론 이학수 삼성전략기획실장,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주요 전문경영인들도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 '新경영' 의미 되새긴다 ]

이건희 회장의 취임 20주년(12월1일)도 올 연말 삼성의 변화와 맞물려 주목된다.

1987년 45살의 나이로 그룹 회장에 취임,신(新)경영을 통해 삼성을 일약 글로벌 기업으로 일궈낸 이 회장의 취임 20주년인 만큼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있을 것이란 게 재계의 예상이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기념행사는 그룹의 내실을 다지는 의미에서 조촐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룹이 처한 위기상황과 대규모 기념행사를 갖는 과정에서 자칫 외부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이에 따라 삼성은 이 회장 취임 20주년을 전후해 계열사 CEO들이 참석하는 기념행사와 내부 임직원을 격려하는 시상식을 열 계획이다.

삼성은 매년 이건희 회장의 생일(1월9일)에 맞춰 시행하던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을 올해는 이 회장 취임 20주년 기념일로 앞당기기로 했다.

여기에 올해는 '신경영상'을 추가로 시상한다.

신경영상은 △특별공로상 △외부공로상 △신경영실천상 등 세 부문으로 나눠 시상되며,각 수상자에게 상금 1000만원이 주어진다.

그룹 관계자는 "(신경영상 시상은) 이 회장의 경영화두였던 신경영 선언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통해 최근의 성장 정체 등 그룹의 위기를 극복하는 모멘템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CEO.임원 조기 인사 ]

삼성그룹의 정기인사가 앞당겨질 것인가,(앞당겨진다면) 인사 폭은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룹 내부에서는 CEO와 임원에 대한 정기 인사가 예년(1월 둘째주)보다 한 달여가량 앞당겨 실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사 규모도 예년에 비해 '대폭' 수준이 될 전망이다.

삼성의 각 계열사들은 최근 CEO와 임원들에 대한 실적 평가에 착수,조기 인사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도 "구체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2008년 정기인사는 예년보다는 빨라질 것"이라며 "CEO 인사의 경우 10월 말까지의 실적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인사 시기는 12월 중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내 인사는 확실한 것 같다"며 "인사 시기는 이 회장의 취임 20주년 기념일 이후인 12월 중순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규모도 '대폭'이 될 것으로 보인다.

CEO 인사의 경우 지난해 4명의 승진인사만 이뤄지는 등 최근 5년 동안 대대적인 인사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올해는 '중폭' 이상의 세대교체형 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건희 회장이 새 경영화두인 '창조경영'을 선언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이를 실천할 진용을 구축하기 위한 인사는 불가피하다는 점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그룹 안팎에서는 계열사 CEO '7∼8명 교체설' 등도 나돌고 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