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박사' 신정아씨와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번번이 기각됨에 따라 검찰에 망신살이 뻗쳤다. 수사 초기의 늑장 대응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무능한 검찰'이라는 성토마저 나오고 있다. 검찰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한 영장 청구로 명예회복을 노린다는 각오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검찰수장인 정상명 검찰총장의 지도력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상명 검찰총장은 21일 오전까지 대검 청사로 출근하지 않았다. 김경수 대검 홍보기획관은 "정 총장이 생각할 것이 많은 모양"이라며 "대검에서는 대책회의 등 아무 것도 예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대검의 주요 간부도 극도로 말을 아껴 잇따른 영장기각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사실상 공황상태에 빠진 셈이다.

무엇보다 검찰이 뼈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늑장수사'라는 비판. 검찰은 수사에 착수한 지 44일이 지나서야 신씨의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은 또 변 전 실장의 숙소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소명하지 못해 법원으로부터 기각결정을 받았고,그 사실이 공개되면서 변 전 실장이 컴퓨터 등을 치울 시간을 벌게 해줬다. 게다가 변 전 실장의 계좌추적 영장은 아예 청구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이 눈치를 보다 자초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윤재 전 청와대비서관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당초 정 전비서관 비리 의혹에 대해 "수사할 내용도,수사계획도 없다"고 버티다 지난달 31일 마지못해 '보완수사'라는 이름으로 재수사에 착수했다. 재수사 착수 17일이 지나서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고 건설업자 김상진씨가 돈을 줬다는 진술만으로 영장을 청구했다. 소명자료가 부족하다는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에 이 모든 정황이 함축돼 있다.

검찰은 뒤늦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인력을 투입하고 동국대 이사장인 영배 스님이 명예 주지인 울산 흥덕사와 동국대,대우건설 등에 대해 '저인망'식 무차별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변 전 실장이 흥덕사에 정부 특별교부금이 배정되도록 외압을 행사했다는 물증을 찾아내는 등 뚜렷한 성과를 거뒀다. 또 신씨의 컴퓨터에서 예일대 박사학위 문서파일과 옛 총장의 서명이 담긴 그림파일을 확보,신씨가 스스로 위조 학위증을 제작했다는 단서를 확보했다. 신씨의 횡령혐의도 상당 부분 밝혀냈다.

검찰은 변 전 실장의 구속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직권남용 혐의를 소명하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해당 공무원이 자신의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직무범위 안에서 현저히 부당한 일처리를 했음을 입증해야 하는데,청와대 정책실장은 국정 전반에 걸쳐 포괄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고 어느 부처에나 '협조요청'을 할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변 전 실장이 여러 정책적 행위가 있었다"고 말해 흥덕사 외에도 다른 사찰에 특별교부금이 배정되도록 했음을 시사했다. 천 대변인은 "내부 회의를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행정자치부에 '협조요청'을 한 것 같지만 적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변 전 실장의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신씨의 영장도 검찰은 추석 이후 재청구한다는 방침이지만 법원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현재로선 불분명하다.

정태웅/이심기/부산=김태현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