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연출작 '사랑' 20일 개봉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남녀간의 사랑을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렸고, 맞을 때 맞더라도 가운데 직구로 승부했습니다.

저는 이렇게밖에 그릴 수 없으니 이에 동의해주시면 고맙구요."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사랑을 더없이 신파적으로 그려낸 영화 '사랑'(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ㆍ진인사필름)의 곽경택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을 그린 것이라고.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한 편은 감독이나 배우에게 되레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이후 어떤 작품을 내놓아도 성공작과 비교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곽 감독에게는 8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친구'가 그렇다.

'친구' 이후 '챔피언' '똥개' '태풍'을 내놓아도 '친구'를 봤던 시각으로 차기작들을 가늠하고 평가한다.

그에게 개인적으로 십수억 원의 빚을 안겨준 '태풍'도 420만 명이 들었음에도 2005년 당시 스크린 싹쓸이 논란을 빚고 블록버스터라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실패작이라는 오명이 남겨졌다.

그러나 그 이후 그보다 더한 돈과 스크린을 점유했음에도 100만 관객도 들지 않았던 영화들이 줄을 이었지만 유독 '태풍'에게 더 무거운 굴레가 씌워졌다.

또한 곽 감독에게 줄곧 따라붙는 말은 마초적이며, 늘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 '사랑'도 이 같은 시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 남자의 징글징글맞은 사랑 이야기이며, 이 역시 부산이 배경이다.

'곽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접근인 것 같다'는 말에 그는 "그런 말 처음 들었다.

그걸 목표로 하긴 했지만 그렇게 보이는 건 내 능력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태원엔터테인먼트 정태원 대표의 내공이 담긴 것"이라고 덧붙이며.
'사랑'은 친하게 지낸 후배의 이야기에서 나온 기획이다.

'조직'에 몸담고 있는 그 후배가 자신과 주변의 성장과 의리, 사랑을 원고지 100장에 담아 곽 감독에게 전했다.

"'조직원'이라 그러면 보통 무식하고 험하다고 생각하는데 가정환경으로 인해 그 길로 들어선 경우가 많습니다.

그 후배는 참 똑똑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대하죠. 그가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글로 써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솔직한 것만큼 사람을 움직이는 게 없죠. 그걸 '로드킬'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할 생각이었는데 가족과 주변에서 모두 만류했습니다.

'그렇게 험한 일을 당해놓고도 또 조폭 이야기냐'면서.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프로듀서가 그 중 사랑 이야기만 각색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사랑'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맞는 주인공의 친구와 함께 조폭과의 연관성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

'친구' 이후 줄곧 계속돼 온 '남자 이야기' 중 이번에 사랑을 꺼내든 그는 "사랑을 세련되고 통통 튀는 이야기로 만들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고 이건 내 방식"이라고 말했다.

"제 방식에 동의해주면 고맙죠. 아닌 분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제게 마초적이라고 말하는데 마초적이란 게 그렇게 나쁜 건가요? 그 안에서 사람냄새가 나고 에너지가 보이면 박수를 쳐주면 되는데. 아무래도 '친구'의 혐의겠죠. 살면서 여자와 어떤 관계가 있었으면 덜했을 텐데 남자와의 관계에서만 주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부산 사투리냐'고 그러시는데 전 시나리오를 제가 씁니다.

작가로서 제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언어이기 때문에 사투리를 쓰면 편합니다."

여자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영화에서 박시연이 예쁘게 등장한다.

무엇보다 주진모의 열연은 주진모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게 만들었다.

"협박했습니다.

단독 주인공을 못해본 진모나, '에릭의 여자'일 뿐이었던 시연이나,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던 민준이나, 특히 저나 이 작품에서 뭔가 해내지 못하면 다 죽는다고 협박했죠. 우리보다 훨씬 나은 배우와 감독들의 작품과 맞붙게 된다며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했죠. 사실 그건 '친구' 때도 써먹었던 협박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하하. 그땐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ㆍ안성기의 '무사'와 맞붙었거든요."

왜 '사랑'이었을까.

"제가 영화를 보고 받은 충격은 저를 영화 만드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제 가슴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몇 편의 영화가 있는데 가만히 보니 절반이 멜로 영화더군요.

'대부'와 '빠삐용'도 있지만 '애수'와 '제니의 초상'도 있는 거죠. 오히려 멜로를 섣불리 들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제가 감당하지 못한 상태에서 멜로영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기에 관객에게 기쁨이며 동시에 고통을 줄 수 있는 게 겁났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아름다운 감성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신파적인 이유는 또 뭘까.

"세상에 젊었을 때 사랑에 목숨 거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제가 군 시절 헌병대 영창 간수로 복무했는데 탈영이나 자살 사건의 이유 중 대부분이 이성 문제였습니다.

나이 들어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죠. 현실이 오히려 영화보다 더 극적입니다.

진모가 연기한 채인호도 젊은 나이에 사랑을 알게 된 겁니다.

그 나이에는 사랑에 목숨 겁니다."

'친구'로 화려한 영광을 누렸던 감독에서 온갖 저평가를 감내해야 하는 처지가 된 지금, 그는 "기대치만큼 안됐을 때 겁나지 않는다.

(흥행 성적을) 무시하겠다는 게 아니라 '뭐, 우짜겠노, 다른 이야기 또 해보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추석 시즌 혈전을 앞두고 있는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사랑'이 박빙의 수치로 예매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