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씨 "세상의 惡ㆍ폭력과 싸워 아름다움을 건져올리죠"
"세계의 기본 구조는 '악'과 '폭력'이라는 생각이 제 소설의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소설가 김훈씨(60)가 11일 한국경제신문의 경영자교육사이트 HiCEO(hiceo.co.kr)가 주최한 다산포럼에서 '남한산성과 나의 문학'을 주제로 강연했다.

김씨는 "소설을 쓰는 사람의 사명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증명해내는 것인데,아름다움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더러움과 더불어 그것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며 "내 소설에서 전쟁,살육,약육강식의 모습이 자주 드러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런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은 1948년에 태어나 전쟁과 1970~1980년대의 경제 성장기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피난 열차 지붕에서 7박8일간의 힘든 여정을 거치는 동안,일부 권력가들은 요강까지 기차 안에 싣고 내려왔다는 얘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었다.

또한 성장한 뒤에는 '밥 못 먹는 나라'에서 '밥 먹는 나라'로 바뀌는 과정에서 생겨난 수많은 악과 비리를 직접 지켜봐야 했다.

"이 모든 사건들이 세계의 악과 폭력 위에서 태어난 것이고,그 안에서 삶의 희망을 얻는 방법을 찾아야 했죠."

그의 최신작 '남한산성'도 이런 의식 위에서 쓰여졌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20만명의 청나라 군대에 포위된 채 남한산성 안에서 목숨을 연명하던 비극을 다룬 역사소설."이 작품은 적에게 포위된 성 안에서 45일치의 식량만으로 그들은 대체 무슨 희망을 갖고 그 날들을 살아갔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기록입니다."

김씨는 소설에서 '투항'과 '저항'을 두고 갈등하던 신하들,이에 상관없이 묵묵히 생활하는 백성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냈다.

소설에서 '말(言)'에 대한 얘기가 많은 것도 언쟁을 펼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는 전쟁 속에서 펼쳐지는 논쟁에서는 어느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주화파와 주전파,혹은 여기에 무관심했던 백성 모두 그들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자 스스로가 삶의 아름다움을 찾기를 바랐기 때문에 희망적인 상황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는 당대의 문제를 다루고 싶다"며 "하지만 과거든 현재든 악과 폭력으로 독자들을 '고문'해 그들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게 하는 과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동영상 hice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