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겸 국제유도연맹(IJF) 회장의 전격 사퇴로 국제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됐다. 특히 박 회장이 2005년 두산그룹 '형제의 난' 와중에도 꿋꿋하게 유지했던 IJF 회장과 IOC 위원 직함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속내는 국제유도계에서 유럽 세력에 밀린 탓으로 알려져 한국 스포츠의 외교력이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유럽출장 중인 박 회장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국제 유도계의 정치적인 배경 때문"이라고 자진사퇴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국익을 위해 국제 체육계에서 열심히 뛰어보려고 했는데 할말이 없다"면서도 "연맹의 내부 분열로 유도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을 지켜볼 순 없었다"고 털어놨다.

평창 올림픽 유치 실패로 안그래도 침체돼 있는 한국 스포츠 외교는 박 회장의 전격 사퇴로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이제 IOC 위원으로는 이건희 삼성 회장만 남았고,올림픽 종목 중 국제경기단체 수장은 강영중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회장과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만 남게 됐다.

한국은 추가 IOC 위원 배출이 절실해졌다. IOC 위원은 총 115명으로 △개인 자격 70명 △선수 출신 15명 △국가올림픽위원회(NOC) 15명 △국제경기연맹(IFs)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과거 종신제였으나 1998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둘러싸고 빚어진 뇌물파동 이후 정년이 70세로 정해졌다. 임기는 8년이며 재선이 가능하다. 매년 열리는 총회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위원을 선출한다.

현재 강 회장과 조 총재가 국제경기단체(IF) 수장으로 IOC 위원직에 도전할 수 있다. 그러나 강 회장 역시 펀치 구날란 수석부회장(말레이시아)의 '모반'에 희생양이 될 위기에 몰려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를 중심으로 지지세력이 많은 구날란 부회장은 강 회장이 자신의 비리에 제동을 걸자 정관에도 없는 불신임안을 총회에 상정하겠다며 압력을 가했었다.

대구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인천이 2014년 하계아시안게임을 각각 유치하며 한껏 부풀었던 한국 스포츠 중흥의 꿈은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무산에 이어 박 회장의 IOC위원직 상실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급격하게 냉각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평창의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3수(修)'를 앞두고 동료위원들의 표를 끌어 모을 수 있는 IOC 위원직 상실은 한국으로선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유일한 IOC 위원이 된 삼성 이 회장의 '나홀로 지원'으로는 창춘(長春) 등 경쟁도시를 방어하기에 힘이 달릴 수밖에 없고 득표 또한 쉽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두산그룹 비서실 관계자는 그러나 "박 회장의 유도연맹 회장 임기는 2009년까지였고 그 이후로의 연임은 계획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평창 유치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박 회장은 앞으로도 20여년간 쌓은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스포츠의 국제 위상 제고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이번 사퇴로 공식 직함을 한꺼번에 두 개나 잃게 됐다. 사업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직함이지만,이 명함들을 들고 쌓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는 막대하다는 점에서 두산그룹이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경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그러나 "박 회장이 IJF 회장과 IOC 위원직을 유지한 건 국익을 위해 봉사한 것으로 그만큼 그룹 경영에 할애할 시간을 희생한 측면이 크다"며 "앞으로 그룹 경영에 더욱 '올인'할 수 있어 회사로서는 악재로 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쌓은 인적 네트워크 만으로도 경제분야에서 '글로벌 두산'을 달성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