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가 '글로벌 톱5'를 향해 다시 뛸 수 있게 됐다.

최근 노조의 고질적인 파업 악순환 고리가 10년 만에 끊어진 데 이어 정몽구 회장이 비자금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그동안의 '반쪽 경영'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룹 경영을 둘러싼 불투명성이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현대·기아차의 경영이 정상을 되찾게 된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그러나 이번 비자금 사건을 교훈삼아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주문도 함께 받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0부(이재홍 수석부장판사)는 6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 회장에게 사회공헌 약속의 강제적 이행,준법 경영을 주제로 한 경제인 상대 강연 두 시간,일간지·경제전문잡지 등에 준법경영 관련 글 각 1회 이상씩 기고 등 3건의 사회봉사 명령을 함께 내렸다.

재판부는 또 배임 공모 혐의 등으로 같이 기소된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에게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준법경영 관련 강연 및 기고'라는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날 "현대차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는 막대하고 정 회장은 현대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그런 기업인을 법정 구속하는 것이 옳은가,득이 되는가 생각할 때 대한민국의 사법부로서 집행유예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선고 배경을 밝혔다.

이로써 작년 3월26일 현대·기아차 양재동 본사와 글로비스 현대오토넷 등 핵심 계열사에 대한 검찰의 기습적인 압수 수색으로 시작돼 1년6개월 동안 이어져 온 검찰 수사 및 재판이 마무리됐다.

이번 집행유예 선고로 해외 시장의 위기 타개와 투명경영 시스템 확립,사회공헌활동 약속 이행 등을 위한 정 회장의 대내외 행보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이른 시일 내 치열한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미국 등 해외 시장을 찾아 판매를 독려하는 글로벌 현장 경영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기아차 슬로바키아공장 등 유럽 공장 방문 시기를 활용,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여수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활동도 벌인다는 방침이다.

안으로는 사내 윤리위원회 설치를 통해 경영감시 활동을 강화하고 사회공헌위원회를 발족시켜 사회공헌 약속을 지킬 계획이다.

또 재계 2위 기업으로서 국내 일자리 창출과 투자확대 방안,중소기업 및 협력사 지원 대책 마련 등 국가적 과제 해결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소모적인 노사 대립 구도에 마침표를 찍고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타개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정 회장이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대·기아차는 이번 사태를 준법 경영,정도 경영을 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노사 관계 및 고객과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좀 더 겸허한 자세를 갖고 빠르고 편한 길을 택하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을 지킨다는 방향으로 경영철학 자체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건호/박민제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