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성윤석 '달팽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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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는데
내 몸이 돌아 소파의 팔걸이를 잡았는데
그 팔걸이도 도는 게 아니겠어요.
뚱뚱한 소파도 돌고 그 위에 벽시계도 돌고
천장도 돌고 하아,하는 소리에 뛰쳐나온
아내도 도는 게 아니겠어요.
병원에 갔지요.
달팽이관에 문제가 생겼다나요.
(…)
전정기관이 망가지면
귓속에다 칩을 박고
언어를 다시 배워야 된다고 하지
않겠어요.
저는 언어를 다시 배운다는 말에
좋아라 했지요.
아,새로 배울 그 언어는 얼마나 신선할까요.
이리 와 봐,나는 널 좋아해.
이런 말을 다시 배울 것 아니겠어요.
(…) -성윤석 '달팽이관'부분
부끄러운 기억을 모두 지우고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은 매혹적이다.
크고 작은 고난을 헤쳐오며 무수한 오점으로 얼룩진 우리의 삶,또는 말들.순결한 백지 위에 향내나는 연필로 선을 긋듯,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첫 말은 무엇이 될까.
갖고 싶은 것,하고 싶은 것,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떠올려 보라.그것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무엇인가.
시인은 '나는 널 좋아해' 같은 말을 새로 배우고 싶다고 했다.
'사랑과 공존'을 최고로 친 것 같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