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에서 컴퓨터 부품 제조업을 하는 이모 사장(49)은 요즘 큰 걱정거리가 생겼다.

2004년 9월 거래은행으로부터 받은 1억엔의 엔화 대출 만기가 곧 돌아오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만기를 연장하면 됐지만 한국은행이 이달 10일부터 외화자금 대출의 용도를 제한하면서 더 이상 엔화 자금을 쓸 수 없게 됐다.

이 사장이 엔화 대출 1억엔을 원화 대출로 갈아타려면 금리 차만큼 추가 부담을 져야 한다.

2004년 당시 엔화 대출 금리는 2.5%였지만 이번에 원화 대출을 받으면 6.5% 이상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3년 만기로 원화 자금을 빌린다고 보면 이 기간 동안 매년 4%포인트가량의 이자를 추가로 물어야 한다.

원화 대출로 갈아타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은 피할 수 있지만 3년 동안 1억원가량의 추가 이자 부담을 져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형편인데 자금 사정이 더욱 빡빡해질 게 뻔하다.

최근 들어 엔화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신규 외화 대출이 사실상 금지된 데다 최근 엔화 환율이 급변동하면서 환 위험이 커진 탓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엔화 대출액은 140억5000만달러로 이 중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액은 30%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협중앙회 관계자는 "정부가 2002년 말부터 수년간 저리의 엔화 대출을 쓰도록 권장하다가 갑자기 엔화 대출을 포함한 외화 대출을 금지시킨 것은 환율관리 잘못의 책임을 중소기업 같은 대출 수요자들에게 덮어씌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이달 1일 외화 대출 용도 제한에 대한 공청회를 실시하고 이틀 뒤인 3일 대부분의 외화 대출을 10일부터 금지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동안 엔화 대출을 써 온 대출자 입장에서는 자금 운용에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엔화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사람들의 경우 원화 대출로 돌릴 때의 이자 부담 등을 꼼꼼히 따져본 뒤 자금 운용계획을 다시 세울 것을 권하고 있다.

또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만기 전 상환을 결정할 때는 대출 금리 차와 대출 전환 수수료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엔화 환율이 연말까지 계속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예상되면 지금이라도 원화 대출로 전환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없애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 5000만엔을 연 금리 2.5%로 대출받은 기업의 경우 당시 원·엔환율(100엔당 790원)에 비해 최근 환율이 오른 상황에서 연말까지 엔화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면 적극적으로 원화 대출로 갈아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때도 원화와 엔화 대출 간 금리 차이인 3~4%포인트의 이자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재 원화 대출과 엔화 대출의 금리 차가 워낙 크고 환차손은 실제 상환 시점의 환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원화 대출로 갈아타는 게 유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며 "상환 시점과 연계해 환율의 흐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