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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론] 양녕ㆍ충녕대군과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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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賢謀 <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정치사상 >

    조선조 태종의 첫째아들 양녕대군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그 하나는 막내동생인 성녕대군이 아팠을 때였다.

    성녕의 병이 악화되자 셋째인 충녕대군(세종)은 밤낮으로 의서(醫書)를 연구해 가며 친히 약을 달여 먹였다.

    그런데 그때 세자 양녕은 애첩 어리를 만나고 있었다.

    국가의 주인인 동시에 왕실의 중심으로서 '일가(一家)'를 이끌 포용력 있는 '대권 후보'가 되기를 바랐던 태종의 기대를 양녕은 저버렸다.

    양녕은 또한 스승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가 공부 대신 기생과 매사냥에 몰두하는 것에 대해 스승 유창은 눈물로 호소했다.

    태종의 엄한 질책도 질책이려니와 '지적(知的) 리더십'을 결여한 국왕의 말이 지식인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양녕이 왕세자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녕은 성격이나 통치 스타일에서 부왕 태종과 너무나 비슷했다.

    따라서 창업의 단계를 지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양녕은 만족스러운 후보가 못 되었다.

    그에 비춰 볼 때 충녕대군은 '준비된 후보'였다.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충녕의 이야기는 왕자 시절부터 자자했다.

    '집안'을 이끌 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을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태종은 충녕을 선택한 첫째 이유로 그가 '정치의 대체'(治體)를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의 대체를 알아 국가에 큰 일이 생겼을 때 의외로 범상한 의견을 내곤 한다"는 태종의 설명처럼,충녕대군은 일머리를 알고 그 해법을 내놓는 창의적인 지도자였다.

    태종이 충녕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는 '국제정치를 안다'는 점이었다.

    태종이 보기에,지정학적 위치상 조선 국왕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었다.

    그 점에서 충녕은 건국 이래 조선이 채택해온 '강대국 동맹노선'을 가장 정확히 이해한 왕자였다.

    그뿐만 아니라 "충녕은 사신을 맞이할 때 말과 동작이 두루 예(禮)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술도 적당히 마실 줄 알아서" 국격(國格)을 높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충녕이 대권 후보로 결정된 세 번째 이유는 "장차 크게 될 자식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충녕의 장자 향(나중의 문종)을 두고 한 말인데,그가 있음으로 해서 왕위 계승의 안정성은 물론이고 정책의 지속성도 확보될 것으로 간주되었다.

    장기적인 전망으로 대권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필자가 볼 때 충녕은 이상의 조건,즉 일머리와 외교를 알고 정책의 지속성이라는 조건을 갖추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가진 정치 비전이다.

    충녕은 자신을 '수성(守成)의 군주'로 자리매김했다.

    그때까지의 '창업의 정치'도 물론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건국한 지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조선왕조를 한 차원 높은 단계에 올려놓을 '수성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게 태종의 생각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백성들의 마음을 끌어안는 게 중요했다.

    혁명과 건국 과정에서 들뜬 민심을 안착시켜 자기의 일자리로 돌아가게 하고,예제(禮制)에 의해 다스려지는 '수성의 시대'로 진입시켜야 했다.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되 우리의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우는 일 역시 충녕의 중요한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정치 비전이 그로 하여금 예정된 대권후보를 제치고 왕위에 오를 수 있게 했다.

    연말 있을 대선을 향해 뛰는 후보 주자들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한곳은 이미 대선 후보를 정했고 다른 당들도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명박 후보에게도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일 것이다.

    한 차원 높은 대한민국을 희망하는 국민들에게 새 정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2007년의 양녕대군'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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