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업계 대표적 토종 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아웃도어)와 빈폴(고급 캐주얼)이 수입 브랜드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35년 전통의 코오롱스포츠는 2004년 노스페이스에 역전당해 1위 자리를 내놓은 이래 격차가 벌어져 '만년 2위'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빈폴 역시 폴로의 거센 추격으로 1위 수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FnC코오롱,제일모직의 고민

올초 아웃도어 업계에선 FnC코오롱에 관한 얘기 하나가 입에 오르내렸다.

'빠른 시간 안에 노스페이스를 잡아라'라는 과제가 그룹 차원에서 논의됐고 제환석 FnC코오롱 사장에게까지 전달됐다는 것.한 백화점 MD(상품 기획자)는 "30여년간의 1등 자리를 뺏겼으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올 상반기 아웃도어 시장은 노스페이스가 1300억원(소비자가 기준)으로 1위고,코오롱스포츠는 800억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350억원의 격차로 노스페이스에 시장 1위 자리를 빼앗긴 이래 코오롱스포츠는 올해까지 4년째 2등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의 영업이익을 비교하면 차이가 더 크다"며 "노스페이스는 '노(no) 세일'을 고수해 매출 대비 순이익률이 30%에 육박하는 데 비해 코오롱스포츠는 철만 지나면 세일을 통해 재고를 털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모직도 고민이 크다.

주력 브랜드인 빈폴이 올 상반기에 '제로'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인 데 비해 폴로는 급성장,고가 캐주얼 시장의 '왕좌'를 내줄 위기에 처한 것.롯데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3사에서의 전년 대비 매출 성장률(올 상반기)이 이를 잘 보여준다.

폴로는 신세계 20%,롯데 6.9%,현대 5% 등의 실적을 거뒀지만 빈폴은 롯데에서만 1.5% 성장했을 뿐 신세계나 현대백화점에선 작년 수준의 매출을 올린 데 그쳤다.

절대 매출은 빈폴이 403억원(백화점 3사 매출 기준)으로 폴로(376억원)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지만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언제 뒤집힐지 알 수 없다는 분석이다.


◆1등의 단꿈에 젖었나

간판급 토종 의류 브랜드의 열세에 대해 전문가들은 '1등 전략'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현재 위치를 지키는 데 급급한 바람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한 백화점 MD는 "코오롱스포츠가 10대,20대 등 젊은층 공략에 실패하고 '아저씨 등산복'이란 고정 관념에서 못 벗어난 게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코오롱스포츠는 올 들어 '아릭네비'라는 유명 디자이너를 긴급 투입해 '트랜지션'이란 브랜드를 냈지만 젊은층의 패션 아이콘으로 부상한 노스페이스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 백화점 MD는 "노스페이스는 지난해 업계 처음으로 9월에 겨울점퍼를 내놔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때 안 사면 못 산다'는 인식을 불러 일으켜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며 "마케팅 측면에서도 노스페이스가 한수 위"라고 말했다.

빈폴 역시 '안방'에서 국내 경쟁사들과 치고 받는 사이 폴로를 앞설 수 있는 디자인 개발이나 마케팅 전략에 신경을 못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폴로도 2,3년 전엔 한국인의 체형에 맞지 않는 사이즈와 디자인을 공급하는 등 잇따른 패착으로 퇴출 위기까지 몰렸고 노스페이스 역시 1996년 진출한 이후 장시간 동안 주목받지 못했었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수입 브랜드를 선호하는 사회적 현상에다 빈폴과 코오롱스포츠라는 경쟁자들이 1등의 단꿈에 취해 있는 사이 절치부심하면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