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국제금융시장의 신용 경색 우려가 엔 캐리 트레이드(싼 엔화를 조달해 고수익 외화에 투자하는 것) 청산을 부를지에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엔 캐리 청산은 미국 유럽의 주식·채권 값 폭락을 유발하는 제2의 폭탄이 될 수 있어서다.
일단 시장에선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지난 9일 뉴욕 증시가 폭락하면서 외환시장에선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려는 모습이 뚜렷해지면서 엔화 값이 급등했다.
10일 도쿄외환시장에선 엔화 가치가 한때 달러당 117엔대로 뛰었다.
특히 엔 캐리의 주요 투자 대상이었던 뉴질랜드와 호주달러 등에 대해선 더 크게 오르는 양상이다.
이날 뉴질랜드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는 전날 뉴질랜드달러당 90.08엔에서 88.83엔으로 급등(환율 하락)해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스티브 버틀러 스코티아캐피털 외환트레이딩 담당 이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계속 시장을 따라다니면서 트레이더들이 극도로 예민해졌다"며 "시장이 계속해서 리스크 줄이기에 나서는 한 엔화 값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엔 캐리가 단기간에 대규모로 청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엔 캐리의 핵심 요인인 일본과 다른 나라의 금리 차가 여전하기 때문.일본의 정책금리는 연 0.5%로 미국(연 5.25%)과 아직도 4.75%포인트의 격차가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환변동 리스크 프리미엄을 감안해도 미·일 간 금리 차가 2.5%포인트까지 좁혀지지 않는 한 엔 캐리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행은 이달에도 금리를 올리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스에자와 히데노리 다이와증권 SMBC 수석 투자전략가는 "오는 22~23일의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 전에 발표될 2분기 국내총생산(GDP) 실적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라며 "경제 기초 여건은 이달 중 금리를 인상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 등 개인투자자들이 엔 캐리 청산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단카이로 불리는 베이비부머의 정년퇴직으로 일본에선 향후 3년간 800만명 이상이 퇴직금과 연금으로 약 50조엔(약 400조원)을 손에 쥐게 된다.
이들은 저금리의 일본 은행예금보다는 투자신탁이나 외화채권 등에 투자하는 성향을 보일 전망이다.
지금도 엔 캐리로 일본을 빠져나가는 돈의 약 75%는 개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윤만하 한국은행 도쿄사무소장은 "단기적인 엔화 강세는 오히려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개인들에게 또 다른 엔 캐리 트레이드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주 외환시장이 출렁일 때 '와타나베 부인'(엔 캐리 트레이드에 나선 일본 가정주부를 통칭하는 표현)은 오히려 상승한 엔화를 팔고 투자국의 통화를 사들이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